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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의학칼럼
말하는 청진기
더불어 읽을 따스한 시 한 편을 써달라 는 청탁을 한 일간지로부터 받았다. 함께 읽 을 따뜻한 시? 그래, 썰렁하고 건조한 진료실 을 뎁힐 시를 짓기로 했다.
이탈리아 투리노 의대 파브리지오 베 네데티 교수는 건강한 이가 환자가 되면서 다음의 네 단계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건강 한 사람이 아픔을 경험하여, 고통을 줄이고 자 하는 욕구가 생겨, 의사를 만나고, 치료 를 받는다.’ 의사는 대개 세 번째 단계의 환 자를 만난다.
이때에 환자는 신뢰와 희망이, 의사는 공감과 동정이 발동하여 작용하여 의사와 환 자의 관계가 긍정과 부정으로 갈린다고 한 다. 그렇다면 이 갈림길에서 온전히 긍정의 결과만 열매 맺힐 수 있도록 이끄는 도구는 바로 말, 말의 작동이다.
이미 2000년 전에 히포크라테스는 “ 의사는 환자의 말만 잘 들어도 정확한 진단 에 이를 수 있고 상당수의 환자는 잘 들어주 기만 해도 치료가 된다”고 말하였다. 우리나
라 조선시대의 책에도 의사 의 덕목 중 으뜸을 말을 잘 하는 것, 즉 의사소통을 잘 하는 의사를 최고로 적고 있 다. 명언이나 옛 기록을 굳이 빌 리지 않더라도 진료의 가장 중요한 도구는 ‘
말’이다.
대화를 통해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 위
해 필요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언 어 소통은 의학적 진단과 치료의 정확성을 높이는 훌륭한 수단의 하나이면서, 동시에 환자와 의사 사이의 유대관계 형성에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말이 없어진 진 료실. 검사 데이터만 가득한 진료실. 마주보 고 앉아 있어도 멀게만 느껴지는 거리 이것 이 오늘의 현실이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기계문명의 발달로 환자와 의 사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고 지적한 다. 푸코는 그 멀어짐은 청진기의 발명서부 터 시작되었다고 본다. 청진기가 발명되면서 직접 귀를 대고 듣던 몸 안의 소리를 청진기 길이만큼 떨어져 듣게 되고, 그 후 문명의 발 달만큼 점점 더 멀어져 이제는 아예 환자는 검사센터의 최첨단 촬영 진단기기 속에 누워 있고 의사는 창밖 또는 전연 다른 건물의 한 곳에서 모니터를 통해 바라보고 있다.
이런 형편 속에서도 다정한 미소로 환 자를 맞이하고 손목을 살며시 잡고 맥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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