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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타이 차림에 한 손엔 서류가방을 들고, 또 한 손은 휴대전 화로 통화를 하는 형상이다. 집을 온전히 벗어나기도 전에 일 과 관련된 통화를 하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데, 전형적인 직 장인의 모습이다. 정국택의 ‘Businessman’. 정국택은 현대를 살 아가는 직장인을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해 왔다. 원통형의 머 리와 몸, 반구형의 관절을 스테인레스 스틸로 심플하게 표현 되었지만, 그 어깨 위로 삶의 고단함이 느껴질 만큼 특징을 잘 묘사하고 있다.
“죽은줄도모르고그는/황급히일어난다/텅빈가슴위에점 잖게 넥타이를 매고/ 메마른 머리칼에/ 반듯하게 기름을 바르 고/ 구더기들이 기어 나오는 내장 속에/ 우유를 쏟아 붓고/ 죽 은 발가죽 위에/ 소가죽 구두를 씌우고/ 묘비들이 즐비한 거리 를/ 바람처럼 내달린다...”
김혜순의 시 ‘죽은 줄도 모르고’ 중의 한 단락이다. 죽은 줄도 모르고 침대에서 일어나 넥타이를 매고, 구더기들이 기어 나 오는 내장 속에 우유를 쏟아 붓고 공동묘지 같은 거리로 달려 나오는 현대인을 좀비로 비유했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애들이 다 크기 전까지 함부로 직 장을 뛰쳐나와서도, 잘려서도 안된다.
죽자 살자 하고 앞만 보고 뛰어야 한다.
회사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피하게 다람쥐 쳇바퀴에 올라탄 것처럼 끊임없이 반복해서 뭔가를 돌려야 하는 과정 이며, 끊임없이 산 정상으로 바위를 밀어 올리기를 반복하는 시지프스의 운명과 닮았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형벌이다. 그 무의미함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바위를 굴리듯, 내일이면 좀 더 나아질 것이라고 근건 없는 낙관을 품고, 묘비가 즐비한 거리를 바람처럼 내달린다.
직업이 인간을 정의하듯, 출근을 한다는 것은 가장 역할을 하 고 있음을 증명하는 행위이니까.
오늘도 걷는다
걷고 뛰기를 반복하면서 아득바득 살다가, 때론 갈지(之)자를 그리며 갈팡질팡 하다가 문득 이런 질문과 맞닥뜨릴 때가 있 다 “왜 이렇게 바쁘고 정신 없이 살아야 하나?”
쉽게 결론 내릴 수 없는 근원적인 질문이지만, 언제나 ‘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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