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1 - 은혜의 70년, 여호와께 돌아가자 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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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청년연합회 출범
한국yCBMC연합회 워크숍•송년의밤 한국CBMC는 1999년 5월 임원회의에서 서울·경기yCBMC연합회 출범을
승인하고 초대 연합회장으로 유재원 회장을 선임했다.
29 에서 큰 전환점을 만들어준 사건이었다. 어른을 공경하 프로그램을 개발해 지회 운영에 활용했다. 강남yCBMC에서 지회 활
160 1979년 서울yCBMC의 창립은 한국CBMC 70년 역사 어 믿음이 없는 동료 기업인들을 초대해 복음을 전했으며 다양한 자체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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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한국의 전통으로 말미암아 세계 최초로 연령으로 가 성화를 위해 개발한 프로그램 중 다수가 중앙회 사역으로 채택되었는
입 기준을 삼은 서울yCBMC는 창립 이후 젊은 사역자 데 대표적인 것이 가델 사역이다. 제3장 | 한국CBMC 성장과 사역 내실화
를 배출하는 창구 역할을 수행했지만 소속 회원들의 연령이 높아졌을 1998년에는 기존 yCBMC 회원들 중심으로 전국청년지회창설지원단
때의 대안이 충분치 않았다. 주축 회원이 일반 지회로 이적하면 지회 을 조직해 yCBMC 창립에 필요한 다양한 지원 활동을 펼침으로써 분
운영 자체가 어려워지는 경우도 있었고, 이러한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 당yCBMC, 구리yCBMC 등의 탄생을 이끌었다. 2000년 2월에는 중
해서 지회 이름을 바꿔 일반 지회로 전환하는 곳도 생겨났다. 앙회 차원의 전국 청년지회 조직 활성화를 위한 지원팀이 공식 출범했
제2부 | 비즈니스 세계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한다
개별 yCBMC 지회의 부침에도 불구하고 한국CBMC 전체적으로는 다. 이상숙 중앙회 부회장이 팀장을 맡았으며, 팀원은 유재원, 이충구
yCBMC가 조직의 활력소 역할을 담당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중앙회 협동총무였다.
1992년 서울yCBMC 이충구 회장은 취임 후 yCBMC 지회를 100개 한편 yCBMC 사역이 활성화되면서 보다 체계적이고 지속성 있는 사역
창립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1991년 말 현재 yCBMC는 서울, 부산, 지원을 통해 yCBMC연합회 창립 논의가 본격화되었다. 1999년 3월 중
대구, 청주yCBMC 등 4개 지회에 불과했는데 동역자들과 어떠한 상 앙회 임원회의에 처음으로 서울·경기yCBMC연합회 출범 안건을 상
의도 없이 발표한 ‘yCBMC 100개 창립’ 계획은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 정했으나 그날 회의에서는 임원 개개인의 의견을 듣는 것으로 마무리
들었다. 이충구 회장의 무모하게 보였던 발표는 임원들의 태도를 변화 하고 최종 결정은 다음 회의로 이월시켰다. 1999년 5월 임원회의에서
시켜 결과적으로 인천yCBMC와 강남yCBMC 파송이라는 성과를 이 마침내 서울·경기yCBMC연합회 출범을 승인하고 초대 연합회장으로
끌었다. 특히 강남yCBMC는 서울·경기 지역의 yCBMC 활성화의 중 유재원 회장을 선임했다. 서울·경기yCBMC연합회 결성 당시 yCBMC
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을 뿐 아니라 한국CBMC의 사역을 한 단계 발 지회는 모두 10개였으며, 그중 지방은 창원yCBMC와 광주yCBMC를
전시키는 데 헌신한 사역자를 다수 배출했다. 제외한 8개 지회(강남y, 구리y, 동대문y, 분당y, 서울y, 서초y, 안산y, 인
강남yCBMC 창립 후 yCBMC 활동의 무게추가 서울yCBMC에서 강 천y)가 서울·경기yCBMC연합회 소속이었다.
남yCBMC로 옮겨졌다. 그들은 매년 정기적으로 전도초청만찬회를 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