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7 - 은혜의 70년, 여호와께 돌아가자 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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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한국CBMC 출범 주역
황성수 초대 회장 소천
나서면서 한국CBMC는 실업인과 전문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 단
체로서 위상을 갖게 되었고, 이후 비약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추었다. 이 과정에서 김인득 회장을 보필하며 묵묵히 자기 역할을
했던 황성수 박사의 몫이 작지 않았다.
황성수 박사가 뿌린 CBMC의 씨앗은 2021년 현재 국내 278개 지회와
27 한국CBMC 역사의 시작이었던 황성수 박사가 1997년 127개 해외 한인 지회가 비즈니스 세계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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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해 사역하고 있는 선교 단체로 성장했다. 한국CBMC는 1982년 창립
3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평생 그리워했던 하나님
의 곁으로 갔다. 1917년 전라남도 보성에서 황보익 목 30주년을 기념해 개최한 한국CBMC 창립 30주년 기념 감사 대회에
사의 외아들로 태어난 황성수 박사는 법조인, 정치가, 서 황성수 박사의 불꽃같은 CBMC 사역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창 제3장 | 한국CBMC 성장과 사역 내실화
행정가, 목회자로서 삶을 영위했지만 그의 삶 속에는 늘 예수님이 함 립 유공자 표창장을 수여했다.
께 계셨다. 황성수 박사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은 그가 군림하기보다는 황성수 박사는 40대 초반에 신학교를 졸업하고 60세에 목사 안수
배려하고, 섬김을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고 증언한다. 참으로 하나님의 를 받았다. 그리고 1984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미국에서도 그의
청지기로서 주어진 소임을 다하고자 했던 삶이었다. CBMC 사역은 계속되었다.
제2부 | 비즈니스 세계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한다
황성수 박사는 20대에는 일본 제국주의와 싸웠고, 30대에는 공산주 1952년 세실 힐 대령으로부터 소개받은 CBMC와의 인연으로 그는
의자들과 싸웠고, 장년기에는 사회적 불의와 맞섰다. 치열한 삶을 살 CBMC 회원으로서 비즈니스 세계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사
았지만 크리스천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았고, 복음을 전파하는 사역 역과 평생을 함께해왔다.
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최연소 국회의장, 전라남도 도지사를 역임하면 황성수 박사는 일제강점기인 1917년에 태어나 1997년 3월 4일 미국
서도 청렴하게 살았던 그는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 못했다. 그러나 그 로스앤젤레스 굿 사마리탄 병원에서 향년 80세로 소천했다. 그는 대
의 곁에는 늘 그를 돕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국CBMC 설립 한민국 건국과 발전을 위해 기도했으며, 비즈니스 세계에 하나님 나라
의 동역자였던 강민구, 김인득, 최태섭, 최창근, 김경래 회장과 이성재 를 건설하기 위해 끊임없는 사역을 펼쳤다. 한국CBMC는 황성수 박사
총무 등이 바로 황성수 박사와 뜻을 함께했던 이들이다. 가 사역 현장에서 흘린 땀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그가 강단
한국CBMC 초대 회장을 지낸 황성수 박사는 김인득 회장에게 한국 에 서서 이야기한 것을 실천하려고 노력할 것이며, 그가 보여준 섬김
CBMC 회장을 맡아줄 것을 요청하면서도 특유의 겸손함을 잃지 않았 의 미학을 마음속에 간직할 것이다.
다. 황성수 박사는 “CBMC는 실업인과 전문인들이 이끌어야 하는 선
교 단체이니 저보다는 김인득 회장 같은 실업인이 중심을 잡아주었으
면 합니다”라고 하며 김인득 회장을 설득했다. 김인득 회장이 전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