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8 - 은혜의 70년, 여호와께 돌아가자 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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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100개 지회 돌파
대 위기가 역설적으로 기업인들의 가슴에 신앙 열기를 더 뜨겁게 한
것이다. 특히 1990년대 후반 yCBMC를 중심으로 전도와 양육 사역
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도 100개 지회 돌파에 큰 도움이
되었다. 1999년 정기총회에서 김득연 중앙회장은 “우리나라가 IMF
사태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중에도 한국CBMC는 꾸준한 성장
28 한국CBMC는 1951년 대구와 경주에서 처음 CBMC 지 것을 보면 우리 CBMC가 하나님 앞에 크게 쓰임받을 것으로 믿어 의
158 47년 만에 이룩한 100개 지회 을 이룩하고 있습니다. 특히 청년지회가 열정적인 비전에 헌신하는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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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가 창립한 지 47년 만인 1998년에 100개 지회를 돌 심치 않습니다”라고 yCBMC가 한국CBMC 성장의 중심에 있음을 치
파했다. 1998년에 대전계룡, 창원청년, 서울산, 북울산, 하했다. 제3장 | 한국CBMC 성장과 사역 내실화
정읍, 안산, 울진, 분당청년, 용인지회가 새로 창립했고, CBMC 활동이 100개 지회를 돌파한 한국CBMC는 21세기를 맞이하면서 양적 성장
부진한 강릉지회와 의정부지회의 인준을 취소함으로써 12월 말 기준 이 질적 성장으로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영적 비즈니스 리더를 육성
100개 지회가 되었다. 1967년 전국 단위 선교 단체로 한국CBMC가 하는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한국CBMC는 전도와 양육을
공식 출범한 이후 30여 년 만에 이룩한 사역의 열매다. 통해 인재를 발굴하고, 이들의 개인적인 역량을 발전시키는 프로그램
제2부 | 비즈니스 세계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한다
전국에 100개 지회가 있다는 것은 우리나라 대부분의 도시에서 중심으로 교육을 실시했다. 그렇다 보니 대부분 지회가 1~2명의 역량
CBMC 사역이 펼쳐지고 있다는 증거이며, 향후 비약적인 성장을 약속 있는 리더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지회 파송이 활발해지면서 역량
하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의미다. 실제 1951년 한국전쟁 중 대구에 첫 을 갖춘 리더가 전출을 가게 되면 모 지회와 파송 지회 모두 어려움을
지회가 문을 연 후 100개가 되기까지 47년이 걸렸으나 다시 120개가 겪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 한국CBMC는 이러한 시행착오를 반복
느는 데 8년밖에 필요치 않았다. 하지 않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지도자 양성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고
1997년 말 IMF 구제금융을 신청하고 급락한 한국 경제 상황에서 100 판단하고, 이의 해결책으로 CBMC대학 개설을 논의했다.
개 지회를 돌파한 것은 CBMC가 전도와 양육을 통해 크리스천 실업 한국CBMC는 21세기를 앞두고 ‘10/500/10000’이라는 목표를 천명
인들에게 위안이 되고, 서로의 고통을 보듬어주는 순기능을 하고 있음 했다. 즉 10년 내에 500개 지회 창립, 1만 명의 회원 육성을 목표로 사
이 증명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역을 펼치겠다는 것이다. 목표 달성을 위해 2000년에 CBMC대학을
개설하고 당면 과제인 지회장 육성에 주력했다. 지회장 육성 과정을
지도자 육성 시스템 구축 수료한 회원들이 새로운 지회 창립에 나서면서 신규 지회 증가가 탄력
1930년대 세계 대공황을 맞은 기업인과 전문직업인들이 미국에서 을 받게 되었으며 신규 창립 지회들의 초기 정착과 안정적인 운영에도
CBMC를 처음 결성했듯 국내에서도 외환위기라는 기업들에 닥친 최 큰 도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