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1 - 은혜의 70년, 여호와께 돌아가자 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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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시아 사역의
출발점이 된 한국CBMC
계를 대표하여 손인식 의사, 법조계 대표 임문석 변호사와 이중근 판
사, 교육계를 대표한 소동렬 교장, 금융계를 대표한 이성원 장로가 최
초로 이 땅에 CBMC를 조직하고 말씀과 기도, 전도 운동을 전개했다.
경주에서는 제18육군병원의 이경화 소령을 통해 경주CBMC와 포항
CBMC를 조직했다. 창립과 함께 우리의 선배들은 밤늦은 시간에 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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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MC는 출범과 함께 미국과 캐나다 지역에서 활발한 사역을 펼쳤 서 촛불을 밝혀 놓고 기도하거나 교회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그
다. 하나님의 사역자로서 예수를 믿지 않거나 예수를 믿더라도 신앙 들이 기도하며 봉사하고, 열정적으로 전도했던 열매를 70년이 지난 지
생활과 비즈니스를 별개로 생각하고 생활하던 실업인들에게 복음을 금 사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전하고 예수님의 제자로 양육하며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감당케 했 1952년 부산 피난 시절 힐 대령은 당시 자유당 소속 민의원이고, 기독
다. CBMC의 전도와 양육 사역으로 수만 명의 실업인과 전문직업인이 공보 부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던 황성수 박사를 찾아가 CBMC를 소개 제1부 | 국제CBMC 출범과 한국CBMC의 해외 사역
CBMC의 깃발 아래 모여들었고, 북미주 전 지역에 CBMC 지회가 새 하고 CBMC를 조직할 것을 권유했다. 그즈음 일본 도쿄CBMC 회원
롭게 설립되었다. 의 추천으로 미국CBMC 본부의 도날드 맥도날드 총무가 황성수 박사
북미주 지역의 CBMC 지회들이 자리를 잡자 1950년대부터 CBMC 에게 CBMC를 소개하는 자료와 입회 원서를 보내 한국에도 CBMC를
제1부 | 국제CBMC 출범과 한국CBMC의 해외 사역
의 사역 발길은 북미주를 벗어나 다른 대륙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
첫걸음이 호주였고, 두 번째가 아시아 대륙이었다. 아시아에서는 한국 한국CBMC 창립총회 1967년 5월 서울 프레지던트호텔에서 15명의 지역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한국CBMC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한국CBMC는 이를 계기로 전국 조직의 위상을 갖추었다.
과 일본에 CBMC의 손길이 가장 먼저 닿았다. CBMC가 소개될 당시
우리나라는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도발한 전쟁으로 나라 전체가 포
화에 휩싸여 있었다. 국민들은 영적으로 황폐해져 있었고, 경제는 대
부분의 생산 시설이 파괴되어 폐허가 되다시피 했으니 더 나빠질 것
도 없었다. 하나님은 전쟁의 상처로 고통받고 있는 우리 국민들에게
CBMC를 보내주셨고, CBMC에 가입한 초기 회원들은 서로 위로하며
용기를 얻고 재건의 희망을 갖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처음 CBMC를 소개한 사람은 미국 군사고문단으로 한국
에 와 있던 세실 힐(Cecil Hill) 대령이다. 힐 대령은 하나님의 위로와
보호가 절박한 한국 사회의 리더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
의 부르심이라고 생각했다. 힐 대령의 권면으로 1951년 대구에서 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