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3 - 은혜의 70년, 여호와께 돌아가자 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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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나눔과 섬김을 토대로
성장한 아시아CBMC
조직할 것을 강권했다. 이러한 하나님의 절묘한 인도하심을 통해 독실
한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던 황성수 박사는 CBMC가 우리의 어려운
현실을 타개하는 데 도움이 되겠다고 판단했다. 그는 자신이 몸담고
있던 기독공보에 CBMC 소개문을 게재하고 부산과 서울에서 CBMC
설립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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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과 함께 실업인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대도시 중심으로 아시아 사역의 출발점이 된 한국CBMC
CBMC 지회 설립이 이어졌다. 지회 숫자가 늘어날수록 지회를 아우
를 수 있는 전국 조직의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서울CBMC가 중심 1967년에 정식 출범한 한국CBMC는 지역 CBMC의 횡적 유대를 통
이 되어 전국 조직인 한국CBMC 출범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한국에 해 성장 기반을 구축했다. 특히 서울CBMC는 1973년 4월에 발전적
CBMC가 첫발을 내디딘 지 16년 만인 1967년 5월 서울 프레지던트 조직 개편을 통해 새로운 비전 제시와 적극적인 성장을 도모함으로써 제1부 | 국제CBMC 출범과 한국CBMC의 해외 사역
호텔에서 국제CBMC 스테딜바워(Stedelbauer) 이사장이 참석한 가 한국CBMC의 핵심 지회로 새롭게 자리매김했다. 당시 한국CBMC에
운데 한국CBMC 창립총회를 열고, 한국CBMC가 출범했다. 이날 창 서 서울CBMC의 역할과 위상은 절대적이었으며, 서울CBMC가 한국
립총회에는 서울, 부산, 수원, 군산, 목포 등지에서 15명의 지역 대표가 CBMC를 이끌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973년 9월 26일 서울
제1부 | 국제CBMC 출범과 한국CBMC의 해외 사역
참석했으며, 초창기부터 CBMC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황성수 박사를 세종호텔에서 개최한 제1차 한국CBMC 전국대회 역시 서울CBMC의
초대 회장으로, 정태성 회장을 이사장으로 추대했다. 적극적인 협력에 힘입어 치를 수 있었다. 전국에서 70여 명이 모인 제
1차 전국대회를 계기로 한국CBMC는 명실상부한 국가 단위체로서의
역할은 물론 산재한 지역 CBMC의 구심체로서 CBMC 공동의 비전과
우리나라 상황에 맞는 프로그램을 제시하는 역할도 담당하게 되었다.
제1차 한국CBMC 전국대회는 한국CBMC를 바라보는 국제CBMC의
시각도 바꾸어놓았다. 국제CBMC는 1973년 10월에 열린 제35차 국제
CBMC대회에서 CBMC 사역의 본격적인 해외 전파를 위해 노력할 것
이며, 동남아시아 지역은 한국과 함께 적극적으로 CBMC 사역을 펼
쳐나갈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이듬해 열린 제36차 국제CBMC대회
에서는 한국CBMC를 동북아시아 지역 이사국으로 선출했으며, 한국
CBMC 황성수 회장을 국제이사로 추대했다. 우리나라가 국제CBMC
의 다섯 번째 이사국으로 일본, 홍콩, 대만을 관할하는 역할을 맡게 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