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9 - 월간사진 2018년 1월호 Monthly Photography Jan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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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들에서 출간된 박종우 사진집 <DMZ 비무장지대>.
슈타이들과의 협업
박종우 작가가 슈타이들(Steidl)에서 책을 출간한다는 소식을 접한 것은 2017년 5 다. 60년 넘게 세상과 단절된 그 곳은 놀랍게도 너무나 아름답고 평화로운 모습이다.
월이었다. 사진가라면 누구나 꼭 한 번 책을 내고 싶어 할 정도로 명성이 자자한 독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며, 때론 울긋불긋 단풍과 자욱한 안개 그
일 출판사 슈타이들. 몇 년 전 대림미술관이 슈타이들이 만든 책으로 전시를 기획했 리고 아름다운 석양을 품에 가득 안고 있다. 한반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역으로 남
을 만큼 출판을 예술의 경지에 올려놨다는 평가를 듣는 곳이다. 그런데 한국 사진가 아있는 DMZ가 박종우의 심미안을 통해 역사에 기록될 수 있어 다행스러울 따름이
로는 처음, 슈타이들이 박종우 작가와 손을 잡은 것이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월간 다. 작가 역시 생전 처음으로 가본 DMZ가 상상하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고 한다. 삼
사진>이 바로 접촉을 시도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출간은 계속 미뤄졌다. 결국 엄한 군사시설과 머리가 쭈뼛 설 정도의 긴장감을 예상했었던 게 사실. 그런데 실제
2017년 연말에 이르러서야, 박종우의 <DMZ 비무장지대>가 국내에서 첫 선을 보이 로 마주한 DMZ는 국내 여느 시골 풍경과 다를 바 없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
게 됐다. 기다린 만큼 기대감도 컸다. 그를 만나 슈타이들과의 작업 이야기를 들을 수 인 것은 철원 평야였다. 습기가 많아 수시로 안개가 자욱해지는 그곳은 초겨울이 되
있었다. 면 날아드는 철새 두루미 떼로 인해 장관을 이룬다. 한 편의 동양화처럼 아름답고 평
독일의 오래된 도시 괴팅헨(Göttingen), 그곳에 슈타이들의 오래된 4층짜리 건물이 화로운 그곳이 비무장지대(DMZ)라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있다. 도서관이 위치한 4층부터 인쇄 공장이 있는 지하까지, 건물 전체를 모두 슈타 하지만 그의 시선이 시종일관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다. 겉보기엔 평화롭지만 헤아릴
이들 출판사가 사용한다. 박종우 작가는 지난해 4월 괴팅헨에 갔다. 일주일을 꼬박 수 없이 많은 대인지뢰가 가득한 지역부터 동서로 내달리는 삼엄한 철책선, 그리고
그곳에 머물면서 책의 판형부터 편집 스타일까지 대표인 게르하르트 슈타이들과 세 긴장감이 감도는 판문점 풍경까지, 안타까운 현실을 향한 냉정한 시선도 담겨 있다.
심하게 의논했다. 사진가를 출판사가 있는 도시에 기거시키면서 집중적으로 소통하 박종우의 본격적인 DMZ 작업은 2009년 10월 시작되었다. 한국전쟁 60주년을 맞
는 것은 슈타이들의 특징이다. 실제로 대표인 게르하르트 슈타이들은 대단한 워커 아 국방부가 휴전 후 최초로 민간인인 박종우에게 DMZ 내부를 기록하도록 허용한
홀릭으로 알려져 있다. 새벽 5시에 출근하고, 의자가 없는 사무실에서 일을 한다. 사 것이다. 놀랍게도 이전까지 단 한 번도 비무장지대를 기록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군
진집 전 제작 과정에 관여하고 최종 결정을 내린다. 마치 의사가 처방을 내리듯 모든 사시설이라는 이유로 그간 외부 공개가 전혀 허용되지 않았던 GP를 비롯해 항공촬
일정을 직접 조율하고 지시한다. 우리나라 출판사와는 사뭇 다른 시스템이다. 영까지, 군의 도움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작업을 진행하던 도중 천안함 사태가 일어
오랜 진통 끝에 출간된 <DMZ 비무장지대>는 표지에서부터 강렬한 느낌이 전해진 나면서 한동안 촬영이 중단되기도 했지만, 분단 풍경에 대한 작가의 꾸준한 관심은 9
다. 삼엄한 경계를 서고 있는 남한 및 북한 군인의 모습이 앞뒤 표지를 장식해 묘한 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이제 그의 시선은 남북한의 DMZ를 넘어 유럽으로 향하고 있
대비를 이룬다. 마치 철책을 연상시키듯 뾰족한 타이포그래피가 시선을 잡아끈다. 다. 독일과 프랑스 곳곳에는 제2차세계대전으로 인한 전쟁의 흔적들이 여전히 남아
실제 비무장지대에서처럼 책 제목이 남한 쪽 표지에는 한글과 영어 표기로, 북한 쪽 있다. 기회가 된다면 그 흔적들을 찾아 기록하고 싶다고 한다.
에는 한글과 중국어 표기로 되어 있다. 기대감을 갖고 책장을 넘기다 보면 조금의 여 누구도 부여하지 않았지만 작가는 어느새 스스로 이런 사명감을 갖게 되었다. 언젠가
백도 없이 사진이 페이지를 가득 채우고 있음을 알게 된다. 판형과 편집 디자인 모두 다가올 남-북 통일의 시대에, 민족의 한이 담긴 DMZ의 생생한 모습을 후손들이 영
잡지 형식을 띠고 있다. 여느 사진집과 달라 보이는 이유다. DMZ 지도가 9개 챕터를 원히 기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는 오늘도 분단의 현실을 기록하고 있다.
연다. 각 섹션은 비무장지대를 이루는 주요 구역들로서 DMZ 내부를 비롯해 정찰을
위해 만들어진 군사시설 GP(Guard Posts), 얼마 전 북한 병사가 탈출해 주목을 받
았던 공동경비구역 JSA, 남방한계선, 그리고 민간인통제구역 등으로 구성된다.
박종우 11년간 한국일보 기자로 근무하며 우리 사회의 다양한 현상을 취재했다. 다큐멘터리스
트로 전환한 후 세계 각지의 오지 탐사를 통해 사진과 영상작업을 병행하며 사라져가는 소수민
이제, DMZ를 넘어 족 문화와 그들의 생활을 기록하는 데 집중했다. ‘차마고도 1000일의 기록(2007)’, ‘사향지로
(2008)’ 등 차마고도 시리즈와 ‘인사이드DMZ(2011)', ‘오로라헌터(2013)’ 등의 다큐멘터리
누구도 쉽게 가볼 수 없는 곳, DMZ는 많은 이들에게 미지의 세계다. 방송을 통해 몇
외에도 다수의 TV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했다. 한국전쟁 휴전 후 최초로 비무장지대 내부에 들어
번 공개된 적이 있긴 하지만, 사진으로 마주한 DMZ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작가는 이
가 60년의 역사를 맞은 DMZ를 기록했으며 <NLL>, <임진강> 등 한반도 분단과 관련된 작업을
삼엄하고도 긴장감 있는 지역을 때론 애잔하고 감성적인 시선으로 기록하고 있 계속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