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 - PHOTODOT 2017년 4월호 VOL.41 Apr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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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Work 2





















                  만 개의 집, 만 개의 역사를 담다                                글_이연희 기자(hopeof@hanmail.net)
                                                                            카메라에 젖어들다
                                                                     시작은 그랬다. 중학생이던 그는 취미삼아 사진 찍던 아버지를 따라다니곤
                  추영호의 〈鱗/린, Scales〉                                 했다. 아버지가 부재중일 때면 카메라는 그의 차지가 되었다. 수동카메라에

                                                                     필름을 끼우고 집을 나섰다. 산과 들, 곤충, 뛰노는 아이들을 카메라에 담았
                                                                     다. 아버지는 여러 통의 필름을 한꺼번에 인화하곤 했는데 거기에는 추영호
                                                                     가 찍은 사진도 들어 있었다. 추영호는 자신이 찍은 풍경들이 사진이라는 결
                            © 추영호, 도시의 생활 모스코바, 116.8cmX91cm사진콜라주 캔버스,2015
                                                                     과물로 나올 때면 묘한 설렘을 느끼곤 했다. 대학에 가서도 사진에 대한 그
                                                                     의 관심은 계속 됐다. 전자공학을 전공했지만 실험실 보다는 길 위에 있는
                                                                     날이 많았다. 그때마다 그의 손에는 카메라가 들려 있었고, 한 달에 필름 100
                                                                     롤을 찍곤 했다. 그래서인지 사진은 지금까지도 추영호에게 가장 익숙한 표
                                                                     현매체가 되어주고 있다.
                                                                            세상에 없는 집을 통해 세상의 모든 집을 수집하다
                                                                     추영호는 학교를 졸업하고 사진 작업을 하며 세계를 떠돌았다. 그러던 그가
                                                                     한국으로 돌아와 둥지를 튼 곳은 강남이었다. 추영호는 그곳에서 상업스튜
                                                                     디오를 차리고 연예인을 대상으로 하는 패션포토그래퍼로 활동했다. 패션매
                                                                     거진 쪽에서는 물론이고 일반 대중들에게도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졌다. 하
                                                                     지만 그의 마음속 어딘가에는 늘 허기가 자리하고 있었다. 자신만의 작업을
                                                                     하고 싶은 데서 오는 허기였다. 패션사진을 찍는 틈틈이 자신의 시선을 담은
                                                                     작업을 하고 전시를 했다. 〈일산 展〉, 〈5개 도시 展〉, 〈박이소의 잔상〉, 〈홀
                                                                     림〉 등이 그것이다.
                                                                     패션포토그래퍼로서의 정체성과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 사이에서 줄타기
                                                                     를 하던 추영호에게 아티스트로서의 삶을 걷도록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배
                                                                     우 배용준을 도와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이라는 출판물 작업
                                                                     을 할 때였다. 말 그대로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전국을 누비며 다녔다. 그
                                                                     러다 어느 저녁 무렵 어떤 풍경이 그의 의식 속으로 강하게 들어왔다. 촬영
                                                                     을 마치고 운전하며 귀가하던 길이었다. 저녁을 준비하는지 길가에 늘어선
                                                                     집들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집안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은 따뜻했고
                                                                     잊고 지내던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했다. 서울로 돌아와서도 그 풍경은 계속
                                                                     눈에 밟혔다. 그것은 그가 오래 전에 살았던 고향집에 대한 그리움으로 이어
                                                                     졌다. 그는 어머니와 함께 그가 거쳐 왔던 집들을 찾아가 보았다. 하지만 그
                                                                     의 가족들이 몇 번의 이사를 하고, 그가 타향살이를 하는  동안 그 집들은 세
                                                                     상에 없는 집이 되어 있었다. 그곳에서의 추억이 통째로 도둑맞은 느낌이었
                                                                     다. 추영호는 세상의 모든 집들을 ‘수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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