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 - PHOTODOT 2017년 4월호 VOL.41 Apr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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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살아있는 유기체
집을 소재로 한 작업을 시작한 추영호는 재개발 지역을 찾아다녔다. 집들이
만 개의 슬레이트 지붕 오브제 컷
사라지기 전에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서였다. 사람이 떠난 집들은 곳곳에 상
처를 안고 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이 살았을 텐데 대문이며
창문, 지붕 등이 온전하지 않았다. 대형카메라로 집의 외관을 찍던 추영호
는 집안 풍경이 궁금해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세간들이 주인과 함께 떠나갔
지만 그곳에는 개인의 역사와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추영호는 거기
에서 사람들이 남기고 간 이야기를 읽었다. 그러다 문득 집이란 단순히 콘크
리트 덩어리가 아니라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유기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
멸해 가는 집들을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은 욕망이 더 깊어졌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방식은 자신에게 맞지 않았다. 그는 작업 방향이 모호한 상
태에서 일단은 집을 수집해보자는 생각만 했다. 추영호는 전국을 돌며 집을
찍기 시작했다. 기와집, 슬레이트지붕, 식민지시대에 지어진 적산가옥, 새마
을운동 당시에 지어진 집, 비교적 근래에 지어진 슬래브 집들을 카메라에 담
았다. 그리고 그것들을 지역, 양식, 형태별로 구분했다.
경계를 넘나들다
집을 소재로 한 추영호의 작업 방식은 전통방식의 사진작업과는 거리가 멀
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이게 사진인지 아닌지 헷갈리기도 한다. 추영호는
오히려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것에 흥미를 느낀다. 또 어떤 방향으로 흘
러갈지 알 수 없는, 스스로 진화하는 방식이 즐겁다. 틀에, 형태에 갇히지 않
는 자유스러움이 자신의 살아가는 모습과도 닮았기 때문이다.
추영호가 수집한 수만 개의 집들은 가장 먼저 배경으로부터 분리되어 진다.
마치 하나의 퍼즐조각처럼. 그것들은 물감이 칠해진 캔버스에 들어가 새로
운 풍경으로 거듭나기도 하고(鱗/그 동네 그 풍경), 물고기의 비늘처럼 무수
히 많은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도시를 이루기도 한다(鱗/린, Scales). 또한
평면으로 구성되었다가 어느 때는 부조가 되기도 한다. 〈집에 대한 유연한
사고〉처럼. 추영호의 작업은 거의 수행에 가깝다. 그는 〈鱗/린, Scales〉 시리
즈 작업을 할 때면 작품의 공간적인 확장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한다. 그래
서 액자 대신 캔버스에 작품을 담는데, 작업 기간이 한 달에서 석 달이 걸린
다. 조각들 크기도 작품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개 가로, 세로 1×2cm에 지
나지 않는다. 그렇게 작은 수천 개, 수 만 개의 조각을 오리고 붙이는 작업은
생각보다 몹시 지난하다. 그럼에도 그가 이러한 작업 방식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천천히, 깊이 있게 가고자 하는 자신의 호흡과 잘 맞아서이다.
© 추영호, 만개의 슬레이트 지붕, 162cmX132cm, 사진콜라주 캔버스,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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