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5 - 월간사진 2018년 11월호 Monthly Photography Nov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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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핑크색 벽지와 마주보고 있는 책상 두 개, 벽과 탁자에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이미지들,
그리고 정갈하게 놓인 파일. ‘CO/EX’라는 선명한 로고가 새겨진 모니터 화면이 있다. 전시장과
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이질적인 사무 공간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전시에서 배포되는 의문의 협
업계약서까지 디스플레이 되어 있어 한마디로 새롭다 못해 생소하다. 사진 듀오 압축과 팽창
(CO/EX)의 근작 <찰리 오스카 / 에코 엑스레이(Charlie Oscar / Echo X-ray)> 작업을 보고 느낀
첫인상이다.
이미지 키워드로 공간을 시공하다
압축과 팽창은 사진 이미지를 다루는 두 작가 김주원, 안초롱으로 구성된 팀이다. 2016년 두 사
람의 첫 협업 전시 <open-end(ed)>(계남정미소, 2016) 이후, 2018년 <유령팔>(서울시립미술
관)까지 총 네 번의 전시를 가졌다. 그리고 지금 다섯 번째로 공간이 아닌 지면을 이용한 북 작업
을 함께하고 있다. 최근 북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유령팔> 전시에서 선보인 <찰리 오스카 /
에코 엑스레이> 작업은 화이트큐브를 가상 인테리어 사무실로 탈바꿈시킨 공간 구성이 돋보였
다. 설계도에 따라 시공하고 공간을 구축한 것이다. 이미지는 구글 이미지 검색을 통해 얻은 만
장의 데이터를 출력해 파일링 하거나 액자에 끼워 디스플레이 했다. 물론 여기에는 사전에 정해
놓은 규칙이 있다. 이를테면 ‘펜탁스 리코GR2’ 카메라로만 촬영해야 한다든지, 두 작가가 1백 장
씩 촬영한 원본 데이터를 액자에 넣어 타임라인 순으로 디스플레이 한다든지, 원본 데이터 1개
당 상위 50개의 유사 이미지를 구글에서 수집하고, 구글 AI가 제시한 키워드를 텍스트로 샘플북
을 만드는 것 등이다. 이뿐만 아니라 촬영모드, 컨버팅 지침, 유사 이미지 저장 방법 등 세부 조항
까지도 전시장에 비치된 협업계약서를 통해 공개했다. 이 협업계약서는 두 사람의 계약 관계를
증명하는 문서인 동시에 작업의 이해를 돕기 위한 총체적인 설명서인 셈이다.
이들 작업의 중심적인 축은 바로 ‘키워드’다. 서로의 사진 1천 장에 각주를 달아 분류했던 첫 작
업부터, 키워드를 넣고 스톡사진을 구매했던 전작, 그리고 구글 AI가 이미지 좌표를 읽고 제시한
키워드를 가져온 이번 작업까지 일관되게 이미지를 코드화하여 분류하고 해석했다. 또 이를 공
간에 재구성하는 큰 흐름을 계속 이어간다. 압축과 팽창은 이 작업을 통해 디지털 시대에 우리 앞
에 놓인 무수한 이미지 데이터가 소비되고 번역되는 방식, 그 지점에서 발생하는 오류와 한계를
드러내고자 했다.
따로 또 같이
재밌는 점은 압축과 팽창이 계약에 근거해 작업을 하는 듀오라는 것이다. 두 작가는 작업을 시작
하기 전 매번 세밀하게 협업계약서를 작성한다. 그리고 그 계약을 바탕으로 일정을 맞추고 의견
을 조율하면서 작업을 완성해간다. 이들은 비슷한 점이 많다. 둘 다 인테리어 업계에 종사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는, 소위 ‘투잡’ 작가라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스냅사진을 다루며, 주제 없이 방대
한 이미지를 생산한 다음 그 소스들로 결과물을 완성한다는 작업 프로세스도 같다. 계약을 맺는
이들의 독특한 관계는 인테리어 회사에서 클라이언트와 계약서를 썼던 포맷이 그대로 반영되었
다. 방대한 양의 이미지를 생산한 후 두 사람만의 정해진 기준으로 분류하고 전시장에 펼쳐 놓는
방식, 매번 전시했던 결과물을 폐기하고 새로운 디스플레이를 보여주는 스타일도 이제껏 구현해
온 전시들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철저한 계약 관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보면 영락없는 현실 오누이다. “작업을 하다가 의견 대립
으로 다투면 눈도 안 마주치고 헤어진다. 그러다가도 술 한 잔 기울이며 풀어내곤 한다.”는 말에
압축과 팽창 김주원, 안초롱으로 구성된 듀오로 인테리어 업계에 종사
하며, 사진 이미지를 공간에 물리적으로 구현하는 작업을 해왔다. 매 프 서 둘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듀오는 “작업은 일종의 놀이에 가깝다.”고 표현한다. 굉장한 노
로젝트마다 ‘협업계약서’를 작성하고 각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성실하 동량이 뒤따르는 작업임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구상을 펼치는 두 사람은 작업을 즐기면서 한껏
게 이행되었는가에 집중한다. 김주원은 한예종 전문사 조형예술과를 졸
업했고, 안초롱은 홍익대 일반대학원 조소과를 졸업했다. ‘2018 서울 상기되어 보인다. 듀오이기에 도전이 두렵지 않다는 압축과 팽창. 그들의 작업이 변화무쌍한 이
사진축제’ 전시 참여 및 보스토크 프레스 사진집 출간을 앞두고 있다. 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