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4 - PHOTODOT 2017년 5월호 VOL.42 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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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lim Teacher, 2009
〈Perfect Intimacy〉 시리즈 이후에도 작가는 계속해서 ‘사적 공
간에서 드러나는 여성의 자아와 정체성’이라는 같은 주제로 새로운 대상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2009년 경제적 성장과 함께 새로운 현대 문명으로 전
이해 가는 과도기 속 중국의 여성들을 만나 〈The Other Half of the Sky〉
시리즈를 발표했다. 이 작업에서 작가는 빠르게 발전하는 중국 안에서도 현
대 문명이 닿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외곽 지역에 거주하는 중국 여성들과, 중
국에서 무슬림교도로 살아가는 소수민들을 만나 그들의 일상에서 드러나는
여성적, 종교적 그리고 문화적 정체성을 포착해냈다.
지난해부터 작가는 〈The Space Within(공간 안에서)〉이라는 제목으로 새
로운 작업을 시작했다. 이 작업에서 작가는 그동안 해왔던 ‘여성’과 ‘사적 공
간’이라는 주제의 맥락을 이어가고는 있지만 어떤 특정한 종교나 문화에 초
점을 맞추지는 않고 있다. 오히려 대상의 정체를 알 수 있을 듯 말 듯한 모호
한 이미지를 제시하여 관객 스스로 각자가 가진 관념에 대해 생각해보게끔
유도한다.
이 작업에서 작가는 오랜 역사 속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여성의 종교적 또
는 문화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상징물로 인식되어온 베일을 사용하여 오히
려 서로 다른 종교와 문화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와 차이를 모호하게 보이도
록 표현하고 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손을 제외한 신체의 모든 부분을 검은
베일로 감싼 대상의 실루엣은 배경을 이루는 실내 또는 외부 자연 공간 안에
서 일정한 자세로 서 있거나 앉아 있을 뿐이다. 베일을 쓴 사람에 대한 국적,
종교, 성별, 인종 등을 알아볼 수 있는 시각적 정보는 제공하지 않는다. 다만
사진을 보는 관객은 베일의 상징성, 실루엣으로 드러나는 시각적 정보, 그리
고 이미 개인의 과거 역사를 거쳐 내면에 깊숙이 인식되어 있을 각자의 관념
으로 걸러내어 검은 베일이 덮고 있는 대상의 정체성을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작가는 이렇듯 여성을 상징해온 베일을 사용하여 대
상의 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덮어버리는 행위로 현재 전 세계적으로 극심해
지는 종교분쟁 속에서 정체성의 위기를 맞은 여성을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점점 더 그 목적과 의미를 상실한 채 격화되어가고만 있는 종교
분쟁에 대한 작가의 고민과 우려를 함께 제시하고 있다.
Lili Almog의 작품은 그동안 미국과 유럽, 이스라엘에서 열린 여러 개인전
과 단체전을 통해 소개됐고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The Museum
of Modern Art, San Francisco), 휴스톤미술관(The Museum of
Fine Arts, Houston) 등 다수의 미국 내 대형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Almog은 오는 5월 호주 시드니와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전시를 앞두고
있다.
Lake Women,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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