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9 - 월간사진 2018년 12월호 Monthly Photography Dec 2018
P. 29
(054-059)대나무-큐엔슨(6p)3차-최종Ok_월간사진 2018-11-21 오후 5:00 페이지 059
대나무 합판, 인화지가 되다
나무의 거친 표면은 매끈한 인화지와는 전혀 다른 매력을 지닌다. 이미지를 프린트했을 때 디테
일이 약해지고 선명도도 떨어지지만, 디테 큐어스 트웬슨(Ditte Knus Tønnesen)은 그러한 부
분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그녀의 <Dissolving Boundaries> 작품은 사진 인화지로는 느
낄 수 없는 독특한 시각적 미감을 보여준다. 거친 촉감과 고유의 결을 지닌 가공된 대나무(합판)
소재와 전통적인 방식으로 인화한 돌 사진은 다소 생경하지만, 자연의 호흡을 공유하고 있다. 나
무의 결은 시간을 의미한다고 한다. 시간의 결에 따라서 음영이 생긴 이미지는 바람에 깎이면서
마모되었을 돌의 시간과 오버랩된다.
작가는 원래 재료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고 한다. 나무, 가죽, 콘크리트, 투명 아크릴판 등 다양
한 물질을 작업에 사용하는 이유다. 그 재료가 지닌 각각의 특성을 이해하고 작업의 개념에 포함
시키곤 했다. 작가가 이번 작업에서 대나무를 선택한 이유는 대나무 결이 지닌 고유한 패턴을 보
고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녀 말에 의하면 “자작나무와 비교했을 때 대나무는 판 전체가 균
일한 편이고 자연스러운 결이 돋보인다.”고 한다.
이미지, 입체를 입다
이 시리즈는 북유럽 자연풍경을 촬영한 아날로그 사진에서 시작되었다. 작품 속 돌 사진은 작가
의 오랜 관심사인 석조채석장의 풍경을 담고 있다. 인간이 돌을 채취하면서 남겨진 흔적들은 자
연인 동시에 인간이 만들어낸 풍경이다. 트웬슨은 자연과 인간이 상호작용하는 풍경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 롤라이플렉스 4x4 트윈렌즈카메라로 촬영된 이 사진은 고전적인 암실 인화작업
을 거쳐서 결국 대나무에 입혀진다. 작가는 직접 대나무 합판에 감광유제를 바르고 찍어온 풍경
이미지를 섬세하게 프린트한다. 이때 평면이었던 이미지는 입체가 된다.
나무, 가죽 등 다양한 재료와 설치작업을 위한 다양한 공구들. 트웬슨은 “나는 사진을 3차원이 되기 위한 표면으로 생각한다. 이 이미지를 3차원의 세계로 가
져오기 위해 물리적인 구조물과 합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그녀의 실험은 거기서 멈추지 않
는다. 형태를 자르고, 겹치고, 구조를 만들어 전시공간에 설치하기까지 이미지를 파편화하고, 새
로운 방식으로 재구성한다. 작가의 작품에서 돋보이는 점도 이 조각적인 형태다. 사진과 조각, 이
미지와 실제 공간의 경계에 놓인 사진인 셈이다. 결국 나무 합판을 인화지로 사용함으로써 트웬
슨의 작업은 정형화된 프레임에서 벗어난다. 이미지를 구현하는 방식부터 디스플레이까지 가능
성은 무한히 열려 있다.
자연과 조작 사이
설치된 작품을 보면, 잘리고 확장된 돌 이미지에 자연스레 시선이 꽂힌다. 나무의 결을 덧입은 서
정적인 자연풍경이 합판의 프레임을 만나 이질적인 느낌을 내기도 한다. 이 작업을 관통하는 내
러티브는 바로 자연적인 것과 조작된 것 가운데 흐르는 긴장감이다. 대나무는 자연적인 재료이
지만 공장에서 가공처리를 거쳐 제작된 합판이다. 뿐만 아니라 돌 이미지도 인간이 개입해 바꿔
필름을 빛에 비춰보며 작업에 대한 전반적인 계획을 세운다.
놓은 풍경을 상징한다. 이미지부터 소재, 제작방식까지 자연과 조작이 가해진 것들이 충돌하고
또 조화를 이룬다.
처음 작품을 보았을 때 느껴지는 모호함이 말해주듯, 트웬슨은 작품에 많은 설명을 담지 않는다.
Ditte Knus Tønnesen 덴마크 출신의 시각예술가로 물질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실 그저 이미지와 나무의 물성이 만들어내는 정서를 느끼게끔 제시할 뿐이다. 그녀는 “마치 추상 회
험적인 사진작업을 해왔다. 큐레이터와 두 명의 시각예술가로 이루어진 ‘Void & Co.’ 트
화작품처럼 감상자들이 자유롭게 작품을 해석하도록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렇듯 감상의
리오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2019년 4월 오스트리아 브레겐츠(Bregenz)
의 Kunstlerhaus Palais Thurn und Taxis에서 열릴 그룹전을 위해 고대 그리스의 유 폭이 넓은 이유는 작가가 지속적으로 재료를 실험하고 이미지를 자유롭게 확장하는 것에 방점
적지에서 영감을 얻은 신작을 제작 중에 있다. 을 찍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