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2 - 하나님이 주신 멍석에서 멋지게 놀아라(최웅섭이야기)증보판
P. 42
서 이들을 돌봐주어야 한다는 사실이 큰 고민과 짐으로 따라다녔다. 이 자매뿐만이 아니었다. 모임에 오는 이들은 한결같이 우리가 도
끊임없이 도움을 요청하는 가정교회 성도들, 그들과 언제까지 동거 와주지 않으면 생활해 나가기 어려운 이들이었다. 단 한 번의 불평
할 수 있을지 점점 자신이 없었다. 도 하지 않고 그들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며 같이 살았다. 하지만 그
컴퓨터 학원으로 어느 자매가 찾아왔다. 컴퓨터를 배우고 싶은데, 들의 요구는 끝이 없었다. 하나 채워주면 둘, 둘 채워주면 셋, 끝없는
돈이 없다는 것이었다. 전도할 요량으로 무료로 가르쳐 주었다. 어 요구에 나와 아내는 지칠 대로 지칠 수밖에 없었다.
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복음을 전할 기회가 와서 전도를 했더니, “언제까지 도와주어야 여러분의 요구가 끝이 나게 될까요?”
‘할렐루야!’ 예수를 영접하는 사건이 터졌다. 분명 ‘사건’이라고 표현 하루는 팀원 중 한 성도가 볼멘소리로 한마디 했다. 그랬더니 다
해야 옳고, 영접이 ‘터졌다’라고 해야 맞을 만큼 놀라운 일이었다. 복 짜고짜 돌아온 대답에 어안이 벙벙했다.
음을 제시했는데, 정말 스폰지에 물 스며들듯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이런 일을 하려고 이 나리에 온 것 아닌가요? 그래서 후원을 받
선교사의 맛이, 행복이, 이런 것이구나 했다.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 아서 일하는 것이 아닌가요?”
을 준비해놓고는 이렇게 힘이 나게 하시는구나 생각했다. 학원에서 우리가 그들을 돕는 것이 당연하다는 소리에 망연자실할 수밖에
갖는 예배 모임에 남자 친구도 데리고 와서 같이 참석하기도 했다. 없었다. 가정에 모임을 만들어 그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믿음이 성
모임을 통해 그 자매의 가정에 대하여 깊이 알게 되었는데, 가정 장하는 모습에 행복한 적도 있었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듯 답이
에 엄청난 고난이 있었다. 생활은 가난하기 그지없고, 오빠 둘 모두 없는 일에 힘들었던 적이 더 많았다.
감옥에 가 있는 상황이었다. 아버지는 국영 석유회사에 다니고 있었 현실적 어려움을 겪는 과정에 선교지에서 회사를 설립한다는 것
지만 급여가 얼마 되지 않아 생활수준이 형편없었다. 자매의 아픔 의 의미,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비자 문제를
을 우리의 아픔이라고 생각하고 열과 성의를 다해 도와주며 가족처 해결하기 위해서!’ 당연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의미를 덧붙여 새로
럼 지냈다. 하지만 도움의 요청은 끝이 없었고, 자매의 엄마까지 도 운 선교 방향을 제시해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움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자매가 신혼 살림을 차렸다고 해서 월세 ‘반드시 선교 대상국에서 아래로부터의 선교를 해야 하는가? 사
방에 방문해보니 헛간 같은 곳에서 살고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회에 영향력 있는 계층인 위로부터의 선교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가구와 기본적인 살림살이를 마련해 주는 등 최선을 다해 보살펴 주 두 생각의 줄다리기가 계속되면서, 고민을 거듭한 끝에 지금의 선
었다. 주님 아래 한 가족이니 그렇게 했다. 교 상황에서 답이 없다면 선교 방법을 바꾸어 답을 찾아보기로 결심
42 주님이 지목하여 부른 땅 아제르바이잔공화국 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