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 - 하나님이 주신 멍석에서 멋지게 놀아라(최웅섭이야기)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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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르바이잔에서 무엇인가를 해내야 한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성장률 8~9퍼센트를 유지하고 있다. 매장량이 어마어마한 석유와

            는 마음으로 떠났다. 그날이 2000년 2월 10일이었고, 정착하고자 준                                                   가스 등 풍부한 천연자원으로 인해 국가 재정 또한 넘치는 나라다.

            비해간 전 재산 6천 달러를 수중에 품고 있었다.                                                                재정이 풍부한 만큼, 석유화학 프로젝트, 중소 산업단지 조성을 위
              “무엇을 하려고 왔나요?”                                                                           한 프로젝트, 도시환경 정리와 인프라 구축 등 국가의 근간을 바꾸

              대답을 하기도 전에 또 질문이 날아든다.                                                                   는 수많은 건설 프로젝트들이 진행되고 있다. 인구 9백만 명에 남한

              “베트남? 몽골?”                                                                               의 0.8배인 작은 영토에도 불구하고 경제 대국을 이루고자 하는 열

              “카자흐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입니까?”                                                                     망이 강하고, 올림픽을 유치하고자 노력하는 카프카스 3국 (아르메니아,
              “아, 일본 사람이군요.”                                                                           조지아, 아제르바이잔) 중 가장 영향력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이게 뭔가, 싶었다. 한국인이냐는 말이 나오지 않아 자존심 상한                                                        처음 이 땅에 발을 디뎠던 13년 전, 이 모든 상황이 나의 비즈니스

            것도 크지만, 좀처럼 말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게다가 이것은 만나                                                      를 위한 황금 시장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나는 한 치 앞도 내

            는 현지인마다 조사 하나 틀리지 않고 던지는 똑같은 유형의 질문이                                                       다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이기에 어쩌면 당연했다. 하지만 무슨
            다. 도대체가 너무나 자기중심적이지 않은가! 게다가 어둡고, 사람                                                       일이든 주님이 팔 걷고 나서 주신다면 달라지는 법이다. 실제로 어

            을 믿지 못하는 성향이 보편적으로 깔려 있는 것이 대표적인 국민성                                                       느 개그맨의 유행어처럼 ‘달라도, 너~무 달라졌다’. 그 산 증인이 바

            인 듯 느껴졌다.                                                                                  로 나, 최웅섭이라고 자신한다. 나는 그곳에서 13년 동안 살면서 수

              하지만, 그들의 역사를 조금 이해하니, 그럴 만도 하겠거니 싶었                                                      많은 인맥을 쌓았다. 아제르바이잔의 대통령과 영부인, 비서실장과
            다. 옛 소련으로부터 무려 1백 년 동안 무력통치를 받아 국가의 자존                                                     경호실장, 여러 명의 장관들과 국회의원들, 각 부처의 차관과 국장

            감이 상할 대로 상했을 테고, 자신의 땅에서 나는 석유와 가스를 한                                                      들, 아제르바이잔의 내로라하는 경제인들까지, 숱한 사람들을 친구

            번도 ‘내 것’이라 해 본적이 없는 나라였으니 당연했다. 그저 구소련                                                     로 삼았다.

            의 허수아비로 공산당 정책에 눌려 살아야 했으며, 민족 고유의 문                                                         그들 속에 최웅섭이라는 이름 석 자가 새겨진 것은 전적으로 나의
            화, 정치, 경제는 물론 종교까지 몽땅 잃어버린 나라가 바로 아제르                                                      덕이 아님을 잘 안다. 내가 자의적으로 이루려 했다면, 처음 아제르

            바이잔이었다.                                                                                    바이잔에 발을 디뎠던 보잘것없는 한국의 작은 사업가 최웅섭으로

              카스피 해 연안에 위치한 작은 나라, 아제르바이잔은 매년 경제                                                       여전히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듣지도 보지도 못한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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