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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FSP Vision Camp 2024 [39]




           died of pneumonia in a POW camp, earning the Medal of Honor for his dedication and
           service as a chaplain.
           Moreover, we must not forget that of the 365 newly commissioned second lieutenants who
           graduated from the United States Military Academy at West Point at the outbreak of the
           Korean War in 1950, 110 of them (including 41 killed in action) sacrificed their lives in the
           Korean War. These officers entered the Academy with dreams of serving the world, but were
           killed on the Korean front shortly after commissioning. Their unfulfilled dreams and sacrifices
           to protect a foreign country are deeply appreciated and remembered.
           미군은 1950년 7월 1일 한국에 첫발을 디딘 이후 3년 1개월 동안 전쟁을 치르면서, 전사자 54,246명을 비롯하여 실종자
           8,177명, 포로 7,140명, 부상자 103,284명 등 172,800여 명이 희생당했다. 국군 희생자가 645,000명에 비해 무려 27%나
           된다. 이처럼 많은 미군이 한국 땅에서 희생된 것이다. 특히 우리를 감동시킨 것은 미국 장군의 아들 142명이나 참전하여
           그중에 35명이 전사했다는 사실이다. 그중에는 대통령의 아들도 있었고, 장관의 가족도, 미8군사령관의 아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우리를 숙연하게 만든다.

           즉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아들 존 아이젠하워 중위는 1952년 미3사단의 중대장으로 참전하였다. 대통령의 아들이 남의
           나라에서 참전하여 전사했다는 사실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또 미8군사령관 월튼 워커 중장의 아들 샘 워커 중위는 미
           제24사단 중대장으로 참전하여 부자가 모두 6.25한국 전쟁에 헌신한 참전 가족이다. 워커 장군이 1950년 12월 23일
           의정부에서 차량 사고로 순직할 때, 아버지 시신을 운구한 자가 아들이었으며, 아버지를 잃은 뒤에도 아들은 1977년 미국 육군
           대장이 되어 자유의 불사신이 되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했던 벤 플리트 장군도 한국전에 참전하여 사단장, 군단장, 8군사령관까지 오른 인물이다. 그의 아들
           지니 벤 플리트 2세도 한국전에 지원하여 B-52폭격기 조종사가 되었다. 그러나 지미 대위는 1952년 4월 4일 새벽 전폭기를
           몰고 평남 순천 지역에서 야간출격 공중전투 중 괴뢰도당의 대공포에 전사했다. 지미 대위가 처음 참전을 결심했을 때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는 우리의 심금을 울렸다.
           “어머니! 아버지는 자유를 지키기 위해 한국전선에서 싸우고 계십니다. 이제 저도 힘을 보탤 시간이 온 것 같습니다. 어머니!
           저를 위해 기도하지 마시고, 함께 싸우는 전우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그들 중에는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내를 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직 가정을 이루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라고 보냈다. 그 편지가 마지막이 될 줄이야!
           그뿐 아니다. 미 해병1항공단장 필드 해리스 장군의 아들 윌리엄 해리스 소령은 중공군 2차 공세 때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했다.
           미 중앙정보국 알렌 데라스 국장의 아들 데라스 2세도 해병 중위로 참전해 머리에 총상을 입고, 평생 상이용사로 고생하며 살고
           있다. 또 미극동군사령관 겸 유엔군사령관 클라크 육군 대장의 아들도 6.25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부상당했다.
           한편, 미 의회는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전사했거나 중상을 입은 장병들에게 명예 훈장을 수여했는데 한국전 중 받은 사람은
           136명이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때의 464명보다는 작지만 제1차 세계대전 124명보다는 많은 것은 한국전쟁이 얼마나
           치열한 전쟁이었나를 말해주고 있다. 이 자랑스러운 훈장을 마지막 받은 자는 이미 고인이 된 에밀 카폰 대위로 전사한 지
           62년이 되는 해에 추서되었다(2013.4).

           카폰 대위는 1950년 11월 미제1기병사단 8기병연대 3대대 소속의 군종 신부로서 평안북도 운산에서 중공군의 포로가 되었다.
           그는 탈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냥 남아 병들고 부상당하여 고통 중에 있는 포로들을 일일이 위로하며 희망을 준
           사람이다. 그는 자신도 세균에 감염되어 많은 고생을 했고, 나중에는 폐렴으로 포로수용소에서 사망할 때까지 병사들을 돌보며,
           신부로서 사명을 끝까지 완수한 공로로 명예훈장으로 추서되었다.
           그뿐만 아니다. 우리 국민이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것은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시 미국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임관한 신임 소위 365명 중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희생당한 장교가 110명(그중에 41명 전사)이나 되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은 세계를 가슴에 품고 대망을 펼치기 위해 사관학교에 입교했는데 임관하자마자 한국전선에서 희생되었다.
           피어 보지도 못한 그들의 통한! 세계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이름도 모르는 나라를 지켜주기 위해 아낌없이 목숨을 바쳐준 그들이
           한없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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