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77 - 죽산조봉암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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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편검자(偏瞼子) 소재 중국공산당 북만특위 책임 맹모에 대해 앞 사항
을 보고하고 맹모도 이를 반가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혁명 운동에 지장
을 초래하기 때문에 찬전(讚殿)의 토대 내에 군중을 참가하는 것을 저지
해야 한다」라고 지시하여 홍남표는 반대로 즉시 출동하여 자기를 지지하
는(地盤員) 약 50명을 퇴각시킴으로써 앞 공술과 반대로 홍남표는 세포(
胞) 중에 조선인 공산주의자를 중국공산당에 합류할 사명을 비밀리에 가
지고 있는 관계상 폭동에 참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이
를 위해 홍남표는 김백파, 한형도 등으로부터 여러 차례 「홍○○(원문-번
역자)은 반혁명적 분자」라는 제복의 삐라를 살포, 배척되기에 이르렀다.
ロ. 상해 귀래 후까지 행동
북만에서 활동 중 동년 7월 15일경 북만특위의 지령에 의한 북만, 동만
일대의 노농계급의 실정과 간도 5.30폭동 상황 등의 조사를 띠고 김명시
와 함께 출발하여, 철령하(鐵嶺河), 東京 지방에 가서 공작에 착수하고 앞
과 같이 김백파 일당으로부터 마침내 배격되기에 이르렀을뿐 아니라 중
국 관헌의 취체가 엄중했기 때문에 목적을 완수할 수 없어서 일단 하얼빈
에 돌아가서 칩거하던 중, 일본총영사관 경찰서의 검거가 개시되었기 때
문에 신변의 위험을 느끼고 김명시와 함께 쇼와6년 4월 하얼빈 출발, 앙
앙계(昻昻溪), 천진을 거쳐 동년 5월 10일경 상해에 돌아가 그 사이 중국
공산당에 가입하게 된 ML파 약 20명, 화요회파 약 20명, 수소속 20여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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