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8 - 일산 그리스도의 교회 60주년사 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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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청년회 거쳐 교회에 몸담고 신앙생활을 해왔던 청년들과 학생회 때
친구의 전도로 발을 들여놓은 청년들이 의기투합하여 청년
제
2 장 처음 청년회가 조직된 날은 1962년 3월3일(토) 오후 7시이다. 총 회를 조직하고 기독청년으로서의 바람직한 활동을 전개하기
동 아 현
북 22명(남자 12, 여자 10)이 참석했다. 교회 창립 초기 청년회가 조직된 시작했다.
뒤 모임시간, 활동내용 등은 기록에 나타나 있지 않다. 청년회도 학생 1970년 3월15일 오후 7시반에 7명의 70학번 동기들이 모
회처럼 대중 예배시간에 헌신예배를 드렸다. 여 청년회 발기예배를 드렸다. 담임전도자의 ‘교회의 정병이
시 대 청년회 북한산 등반
되자’(삿7:1~8)라는 설교 말씀 뒤에 총회를 개최하여 회장에 김병진,
1963년, 1964년 청년회 헌신예배 부회장에 민혜진, 총무에 김동구를 선출하였다. 3월22일엔 회칙심의
일시 설교제목 설교자 와 청년회 활동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청년회의 기반을 다졌다.
청년회 (북아현동교회 앞, 1976)
1963.7.7 바울의 굳은 의지(롬8:37) 이영진 전도자 청년회 구성원들은 청년회만의 별도 모임은 금요일 저녁에 드리었
1963.9.8 청년아 일어나라(눅7:11~23) 공삼열 전도자 다. 주일 대예배와 저녁예배에는 그대로 장년 성도들과 함께 예배를
1964.1.26 구속주가 오시기 까지(요19:28~30) 신성종 전도자 드렸다. 그 때마다 일반 성도처럼 순서도 맡아서 진행했다. 청년회 모
1964.2.23 증거하라(롬10:9) 정히건 전도자 임 때에는 늘 담임전도자가 오셔서 설교를 해주셨다. 예배 후 2부 모
1964.3.25 생의 기준(잠1:7) 김명국 전도자 임 시작은 싱어롱시간으로 회원 간의 집회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이
1964.5.31 어둠 속에 서있다(요1:1~5) 최일용 전도자 끌었다. 싱어롱 지도를 위해 YMCA 범우회 포크송 지도자를 초빙하
1964.6.14 축복의 비결(막6:30~34) 김명국 전도자 기도 했다. 다른 교회 청년 성가지휘자인 유낙준 청년이 자주 방문하
1964.8.30 높은 것을 바라지 말라(마7:12) 정히건 전도자 여 노래를 지도하기도 했다. 그 뒤에는 부서별로 집회를 주관했다. 31)
1976년 봄 (청년부 등반) 성경연구, 문학, 음악감상, 신앙토론, 성경퀴즈, 레크레이션 등이 청
1964년도 헌신예배 순서를 맡은 청년 명단을 보면 고인 년회 부서들이 다루는 주요영역이었다. 부서별 활동의 하
환, 전용찬, 허영선, 김정자, 이승학, 김명복, 정제봉, 김영 나로 1970년 14명의 청년이 모여 신앙을 주제로 토론한
일, 윤용섭, 나기수, 최흥수 등의 이름이 나타나 있다. 헌신 내용을 살펴보면 매우 흥미를 끈다. 바로 지금의 청년들
예배는 사회자를 청년 중에서 정하여 진행했다. 그 순서는 이 기독교를 외면하려는 성향이 50여 년 전부터 나타나
묵도-찬송-기도-특송-성경봉독-설교-찬송-헌금-찬송-축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의 순으로 이어졌다. 기도와 특송, 헌금 기도는 청년회원
희망찬 북아현동교회의 청년들 (1976년)
중에서 맡아 했다. 1965년 이후부터 청년회 기록이 빠져 있 ▶ 기독교가 청년들에게 배척받는 이유는?
어 활동내역을 알 수 없다. 그해 후반기에 청년회를 지도하 • 교회가 너무 형식과 계율주의에 얽매어 행동의 구속
시던 공삼열 전도자가 성산동교회 개척을 위해 떠나는 바람 을 받게 만든다.
에 활동이 다소 위축되어진 것처럼 여겨진다. • 청년들에게 미래관과 내세관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 교리의 독선, 신앙의 몰이해, 교파의 편견이 있어 건강
어린이 주일학교 출신들이 대학교에 입학한 1970년대부
31) 그당시 부서는 종교부, 문화부, 봉사부, 친교부 등 4개 부서로 구성
1977년 봄 (청년들의 덕수궁 나들이) 터 청년회가 재구성되고 활성화를 기하게 된다. 중 고등부를 청년회 발기예배 순서 기록물 (1970.3.15.)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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