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5 - 일산 그리스도의 교회 60주년사 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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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희선 목사                            에 매진하였다. 고국에 귀국 후 고령의 연세에도 교계 고문으로 그리스

                                   도의교회 발전을 위해 헌신 봉사하고 계신다. 지금은 자택 근처에 있는
 제
 2 장  우선 교계에서 잘 알려진 심희선 목사가 우리 교   아주그리스도의교회를 섬기고 있다. 심희선 목사의 장남도 목회와 교
    북  회 출신이다. 우리 교회의 가장 선배격이시기도 하  육사업을 하고 있어 2대에 걸쳐 목회자 집안 가보로 이어지고 있다.
 동 아 현
 다. 그는 원래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종로에 있는 S교

 회에 출석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교회의 분쟁으로
   시 대
 상처를 받고 다니던 교회를 떠나 북아현동으로 이사        최재천 목사

 를 왔다. 그리고 우리 교회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심희선목사  그는 이사 오자마자 이웃에 사는 이춘례 권사(김   H교회에 출석하다가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대로 우정에 끌려
 원일 장로 모친)의 전도 권유를 받았다. 그래서 이영진 전도자와의 감  고교시절 북아현동교회로 오게 되었다. 원효로 1가에서 북아현동까
 동적인 만남이 이루어졌다. 그는 무엇보다 “교회의 주인은 목회자가   지 효창공원을 지나 만리재 언덕을 넘어 1시간 이상 도보로 교회에

 아니다”라는 이 전도자의 말에 수긍이 되어 이 전도자께 성경을 배우  출석하는 길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북아현동교회 출석
 게 되었다. 그는 이전에 출석했던 교회에서 목회자와 성도간의 파벌  은 지금의 그를 만드는 시금석 역할을 했다. 신학대학을 지원하고 목

 에 신물을 느꼈기에 비록 작지만 가족 같은 화평한 교회인 북아현동   회자의 길로 가라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된 것이다.
           최재천 목사
 교회에서 평안을 얻었다. 그리고 교회에 등록을 하게 된다.    1970년 그리스도대학교(현 KC대학교) 교육학과에 입학하면서 우

 이영진 전도자와 공삼열 전도자는 적극적으로 말씀을 전하고 그가   리 교회의 주일학교 6학년 교사를 사실상 전담하다시피 했다. 그 결
 그리스도의교회를 바로 이해하도록 도왔다. 그 결과 공삼열 전도자에  과 조상숙 사모, 이춘근 집사 등 믿음의 제자가 나왔다. 그들이 중등

 게 침례를 받았다. 이어서 그를 그리스도의교회 목회자로 키우기 위  부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중등부 교사로 올라가 다시 유혜령 사모, 정
 한 이영진 전도자의 바램으로 그리스도의 교계 지도자인 동석기, 이  승우 목사 등의 제자를 또 길러냈다. 그 때 참으로 깊고도 높은 가르

 흥식, 동주급, 정히건, 임봉수 전도자들과 교류케 된다. 그렇게 몇 년   침의 보람을 느꼈다고 하신다. 그는 이와 함께 청년부 임원으로도 역
 동안 심층적으로 성경을 배우고 익히며 목회자로서의 길을 예비했다.   할을 맡아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이렇듯 청년 공동체 생활도 즐겁게

 드디어 1969년도에 심희선 전도자는 대전 선화동에 대전중앙그리  했지만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스도의교회를 개척하게 된다. 교회 개척 초기에 몇 달은 이흥식 전도  그러다가 1974년 초 임봉수 목사님께 크나큰 믿음의 도전을 받고

 자와 함께 사역을 하였다. 교회 개척에 소요되는 경비와 생활비는 이  일주일간 금식기도를 하게 됐다. 그 기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영진 전도자가 지원해주셨다고 한다. 대전중앙교회에서 성공적으로   만나면서 그는 결국 신학과로 전과했다. 신학생으로 바뀐 그는 교회

 사역한 후에 대구교회 임봉수 전도자가 우리교회 담임목사로 오시는   예배위원으로 봉사도 하고 주일 저녁이나 수요 예배 때 말씀도 전하
 바람에 그 후임으로 대구교회에 부임하셨다. 대구교회 사역을 마친   는 예비 전도자로서의 사역도 열심히 하게 되었다.

 후엔 서울 강서그리스도의교회에서 목회하시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임봉수 목사님. 안점석, 윤병련 장로님, 임
 미국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선교 사역에 올인하셨다.       덕희 권사님께 꾸지람을 받으며 양육받았던 것이 지금의 목회자가 되

 그는 그 뒤 미국 생활에 안주하지 않고 선교사역을 위해 5년 만에 선  는 데 큰 힘이 되었음을 깨달으며 감사드린다고 한다.
 교를 위해 중국으로 가셨다. 그곳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영혼구원 사역  그 뒤 최 목사는 KC대학교 학생주임을 역임하고 서대문교회 전도


 144ㅣ1962-2022 일산그리스도의교회 60년사                                         은혜의 60년을 넘어 새시대로ㅣ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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