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0 - 일산 그리스도의 교회 60주년사 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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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하고 있다. 무 선교회라는 비영리 재단으로 온타리오와 캐나다 연방정부에 정식
으로 등록한 뒤 많은 청소년들을 훈련하여 콜린스, 아로랜드 그리고
제
2 장 저는 1957년생으로, 아버님 공삼렬 목사님이 북아현동교 롱렉 선교지에 파송하는 일을 한 해도 쉬지 않았습니다. 왜 부유한 나
동 아 현
북 회(현 일산 그리스도의교회)를 개척하셨을 때는 5살 정도였 라의 원주민들을 선교하느냐고 혹시 묻고 싶은 분이 있다면 저 역시
습니다. 44) 이렇게 부유한 캐나다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의 모습이 얼마나 처참했
던지 이곳이 캐나다가 맞나 하는 질문을 수없이 했음을 말하고 싶습
시 대
공삼열 목사와 손자, 손녀의 모습 (2020년) 너무 어려서 교회 생활이 자세히 기억 나지는 않지만, 그 니다. 더구나 도무지 믿어지지 않게 비참한 원주민들의 삶의 원인이
때 주일학교 교사이셨던 정진영 선생님, 김원일 선생님이 어렴풋이 100퍼센트 기독교인들(주로 연합교회와 가톨릭교회)에 있음을 역사
생각납니다. 주일학교 아이들이 교회를 꽉 채웠던 모습과 선생님들이 공부를 통해 알고 나서 그 민망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
열심히 찬양을 가르치시던 장면이 기억납니다. 저는 목사님의 자녀로 서 나선 선교의 길이 지금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교회 생활을 하던 평범한 학생이었는데, 고등학교 2학년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주의 종이 되기로 결단하였습니다. 그리스
도신학대학을 졸업한 뒤 1985년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하여 Tyndale 정승우 목사
Seminary 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를 취득하였습니다. 1999년 9월
목사 안수를 받고 2004년 3월 벨빌 한인교회를 창립하여 2011년까 정승우 목사는 중학생 때 친구의 전도로 교회에 발을 들여놓았다.
지 담임목사로 시무했습니다 2011년부터 2017년까지는 미주 총회 그 뒤 학생회와 청년회 활동을 하며 적극적인 신앙생활을 했다. 고등
(KAPC) 총무로 재직하였습니다. 그리고 2017년 5월에 총회 선교사 부 시절엔 학생회 회장을 맡아 섬기면서 가끔 밤을 지새우며 학생회
(캐나다 원주민 선교)로 파송받아 지금까지 선교 사역을 감당하고 있 발전과 부흥을 위해 의논하고 합심기도를 드렸다. 또한 다른 그리스
습니다. 도의교회 학생회장들과 경인지구 그리스도의교회 연합회를 구성하
여 각 교회를 방문하며 교류하는 등 활발하게 신앙활동을 전개했다.
정승우 목사
캐나다에 거주하는 가족으로는 아버님 공삼렬 목사, 신학대학 시절 선배들이 이루어놓은 ‘영상의 오솔길’인 문학의 밤을 적극 추진하
만나 1984년 결혼한 김정란 사모와 슬하에 (루디아)Lydia Kong, (여 고 우리 교회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다른 그리스도의교회 문화행사에
호수아)Joshua Kong 일녀 일남이 있습니다. 자녀들은 현재 토론토대 전해주며 나아가 찬조출연 등 재능기부도 했다.
학을 다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며, 우리 꿈나무 선교사역을 위해 물질 하나님께서 정승우 학생을 학생회 활동을 통해 목회자의 길로 예비
과 중보기도 사역자로 든든한 저의 후원자들입니다. 해주셨다. 내성적인 성격을 외향적으로 변화시켜주셨으며 임봉수 담
임 목사님을 통해 신앙적 성숙을 하게 되어 그리스도대학교에서 신학
캐나다 원주민을 선교하는 꿈나무 선교회 을 공부할 결심을 하게 되었다. 또한 안점석 장로님과 정진영 장로님
캐나다 원주민 선교사로 자원한 이유는 1998년부터, 교회를 섬기 등 든든한 몇 분의 선배들의 조언과 격려가 목회자의 길로 들어가는
공재남 목사 부부의 모습 면서도 매년 쉬지 않고 원주민 사역을 해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꿈나 데 힘을 보태 주셨다.
신학대학을 졸업한 후 용산그리스도의교회 전도자로 첫 사역을 시
44) 다음 글은 공삼열 전도자님의 장남인 공재남 목사가 보내온 글임. 작하였고 그 후엔 지방에 있는 낙서교회와 창원교회 담임 목사로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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