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2 - 일산 그리스도의 교회 60주년사 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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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특징을 보자.                                                                                                 넷째 특징을 보자.

                                     우리 교회는 먼저 어린이부터 주님의 성전으로 이끈 뒤 그 부모, 형제자                                                                    윤병련 장로는 갑작스러운 소천을 통해서도 오로지 우리 교회에 대
    제
   2 장                             매들도 차례로 주님을 영접하도록 이끌었다. 먼저 교회 인근에 있는 어린                                                                    한 뜨거운 사랑을 증거하셨다. 교통사고로 돌아가셔서 받게 된 생명보
    동 아 현
      북                            이들을 모아 교회학교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 시절 부모님들은 아무리 어                                                                    험금 일천만원이라는 매우 크나큰 거금을 남은 가족들이 우리 교회의
                                   렵게 살아도 자식만은 나보다 더 나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                                                                   발전을 위해 전액 헌금하셨다. 이 소중한 재원이 우리 교회를 노량진

                                   었다. 자식의 교육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도 희생할 수 있다는 자세로 살                                                                  으로 발전적으로 옮겨가는 성장의 큰 역사, 큰 걸음을 가능토록 했다.
     시 대
                                   아가고 있었다. 그처럼 자녀들은 소중하고 중요했다. 그리스도께서도 바                                                                       서학실 권사는 장남의 소천을 계기로 우리 교회의 창립 초기 큰 믿

                                   로 이런 어린이들과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음의 선배가 되셨다. 아들이 화재로 소천하게 되어 크게 실의에 빠져
                                   자녀는 부모를 믿음으로 이끄는 씨앗이요, 길이었던 것이다.                                                                           있을 때 교회학생회를 같이 하던 아들 친구들의 심방을 받고 교회에

                                     실제로 이 방식은 대단한 성과를 거두었다. 공삼열 전도자는 나중                                                                      나오게 됐다. 허옥준 권사도 소천 때 유언을 통해 교회 건축을 크게
                                   에 이렇게 회고하셨다.                                                                                               도우셨다. 자녀들은 그 유언 대로 장례를 치루고 남은 일천만원을 모

                                     “주일학교에 어린이들이 모이게 되자, 그 어린이들의 학부모들에                                                                       두 건축헌금으로 올렸다.
                                   게 전도해 어른들이 한 분 한 분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다.”                                                                            박정희 권사는 모든 자녀들이 이미 우리 교회의 충실한 믿음의 일

                                                                                                                                              꾼이 되었는데도 머뭇거리시다가 남편의 소천을 계기로 우리 교회에
                                     셋째 특징을 보자.                                                                                               나오셔서 늦깎이 큰 믿음의 권사까지 되셨다.

                                     바로 앞에 나온 특징들은 사실 모두 ‘심방’이라는 중대한 채널, 통                                                                      이처럼 우리 교회 초기의 전도에서 ‘소천’은 그 아름답고도 선한 영
                                   로를 거치고 있다. 나아가 이영진 공삼열 두 전도자도 처음부터 심방                                                                      향력을 더없이 발휘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전도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 전도자는 주일 오전예배를 끝내시면 오
                                   후엔 공전도자와 심방 전도를 하셨다. 오늘날은 개인주의적 성향이

                                   압도적이지만, 당시만 해도 아직 우리 나라는 전통사회의 분위기가                                                                        나. 예배의 시작-‘약과’는 우리 교회 ‘영혼의 만나’가 되었다
                                   강하게 남아 있었다. ‘나’가 아니라 ‘우리’라는 의식이 매우 강했다.

                                   우리 나라, 우리 동네, 우리 교회..로                                                                                       교회 개척을 시작한 이영진 전도자와 공삼열 전도자는 북성초등학
                                     북아현동 지역이 피난민을 비롯해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는                                                                       교 후문에 위치한 4평 남짓한 판잣집을 교회당으로 꾸미고 동네 어린

                                   사실도 심방을 통한 영혼의 소통, 믿음의 교류를 보다 쉽게 이뤄지게                                                                      이들을 교회로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교회는 지역 이름을 따서 ‘북아
                                   하는 요소였다. 고향을 떠나온 아픔을 공유하며 서로를 믿고 의지하                                                                       현동그리스도의교회’라고 했다. 나중에 교회가 틀을 잡았을 때 미국

                                   는 분위기가 더 쉽게 퍼져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가난하기에 더더욱                                                                      그리스도의교회에서 오는 미제과자도 어린이들에게 대단히 유용한
                                   서로 돕고 의지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법이다.                                                                            ‘선도’의 조력자가 되었다. 그보다 앞서 우리 교회 맨 초기에는 바로

                                     무엇보다 우리 교회가 초기 그리스도 시대의 교회 전통에 보다 충                                                                      공 전도자의 아내인 김점순 사모가 만드는 약과가 그 주인공이었다.
                                   실하려는 입장을 지니고 있었기에 더더욱 이런 심방에의 친밀감, 동                                                                       당시 남대문시장에서 떡집을 하시며 약과를 잘 만드시던 사모님의 약

                                   질감이 쉽게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심방 문화’는 그리스                                                                     과는 어린이들에게 최고의 선물이었다. 약과는 기름 코팅으로 일정한
                                   도 교회의 소중한 전도자산으로 축적돼 갔다.                                                                                   모양을 만들었기에 어린이들에게는 떡보다는 훨씬 고급스럽고 이국


           62ㅣ1962-2022 일산그리스도의교회 60년사                                                                                                                                            은혜의 60년을 넘어 새시대로ㅣ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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