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6 - 일산교회 60주년사
P. 166
1. 1980년대 노량진 지역의 모습
노량진 지역은 서울의 근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노량진은 수도인 한양을 지키는 군항이자 물산
중심항으로 교통과 산업, 국방의 중심지로 기능해왔다. 또한 조선왕
조의 왕궁을 정북으로 바라보는 마지막 관용 나루터로서 충청 경상
전라의 3도에서 올라오는 백성들에게는 마지막 집결지이기도 했다.
근대에 들어선 최초의 서구 물질문명의 대표적인 상징이자 동력메
카니즘이라고 할 수 있는 근대철도가 우리나라에서 맨 처음 이곳 노
량진에서 인천의 제물포까지 경인선의 이름으로 깔렸다. 일본과 중국
을 향한 관문이 성큼 노량진까지 치밀고 들어온 셈이다. 그러면서 동
• 1980.07.01. 노량진 중앙그리스도의교회로 재출발 시에 노량진은 바로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죽임을 당한 충신집단인
• 1983.04.10. 제8대 최제봉 목사취임
사육신의 묘소를 21세기인 지금까지도 껴안고 있는 등 전통적 가치
• 1988.03.01. 제2대 장로 장립(이운호, 정부영, 최정근)
에 대한 외경의 마음도 아직 유지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 1989.12.17. 임시예배처소인 상도2동 은혜빌딩으로 이전
노량진은 이렇게 가치관-문명관의 교차로 또는 대립지대로서의 성
• 1992.01.26. 창립30주년 예배
격을 지니면서도 늘 미래를 향해 열려 있다는 특질만은 잃지 않았다.
대립하는 요소 때문에 서로 맞물려버린 채 고여 있기 보다는 순환하
는 것으로서 그 순기능을 서로 살려내는 대단한 생명력을 지닌 지역
이기도 하다.
1970년대 중반 노량진은 국립 서울대학교가 하나의 캠퍼스로 통합
해 관악구의 신림동으로 이전하면서 그 ‘문명의 교차로’라는 강점을
한 계단 더 업그레이드하게 된다. 서울대의 통합이전을 계기로 바로
경부선 호남선의 양대 국철과 서울지하철이 통합된 노량진역이 일거
에 우리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교육중심역’으로서 부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이 지역에 학문의 요람을 꾸민 기존의 중앙대학교, 숭실
대학교 총신대학교 등의 흡인력까지 더해져 노량진은 새롭게 미래를
향해 배우고 노력하는 청소년과 청년들의 새로운 대물결을 맞게 된
다. 특히 서울대의 통합이전에 맞춰 대성학원을 비롯한 대형 명문 대
입학원들까지 서울 구도심에서 일제히 노량진으로 이전하면서 이 일
대는 전국 최대의 교육도심으로 부상하게 된다.
이와 함께 노량진 지역은 서울 최대의 수산물시장을 갖춘 데다가,
은혜의 60년을 넘어 새시대로ㅣ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