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 - 경기룩아트Vol.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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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_이달의 작가 www.klookart.org
거친 흙길언덕에서 바라보는 무의식적 空相
서양화가 이 영 희
방울이 바람을 따라 옆에서 휘몰아치는 장대비가 쏟아져 내렸던 지난여름 어느 날 서울 근교 서양화가 이영희의 작업실을 방문했다.
빗
차에서 내려 작업실 입구까지 몇 걸음에도 온몸이 장대비에 흠뻑 젖어들었다. 머릿카락 끝의 빗방울이 작업실 바닥에 떨어짐을 멈추고 젖
은 몸을 추스르고서야 작업실의 정취에 눈을 돌릴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작업실 빼곡이 쌓여 있는 캔버스들엔 저마다 다른 표정의 인생의 길(road)들이 완성되어 지길 기다리고 있는 표정 이었다. 길(road)들은 잘 닦여져 걷기 순탄한 길이 아닌, 비
포장의 거친 길위에 자갈이 튀어나와 자동차 바퀴에 튕겨져 나갈듯 Off Road의 야성적인 모습들의 길이다. 그 길에 사람의 발길조차 접하지 못한 길 언저리에는 제멋대로 우
거진 갈대와 야생의 잡초목 들이 무성하게 뒤엉켜 화가 이영희가 표현 하고자 하는 더욱 거칠고 모진 삶의 역경을 표현하고 있다. 거친 흙길은 중간에 가파른 언덕이 구성되고
언덕에 가려진 길의 끝자락은 확인할 수 없는 미래의 삶을 무의식적 공상(空相)으로 희망이든 절망이든 상상하는 대로를 예견하는 듯 지평선에 숨어들어 판타지의 세계로 감
상자의 시각을 자극해준다. 그림 속에 표현된 길은 우리가 봐왔고 걸었던 실체적 형상의 길이지만 정서적으론 평범한 시골길이 아니다. 우리의 삶이 녹아들어있는 인간의 한
여정의 길이다. 일생의 여정에 따른 수많은 이야기와 사건, 사고 그리고 인간 사회의 정(情)이 있고 미래를 예지하는 평범치 않은 길이다. 그리고 그 길은 한고비 가파른 언덕
을 통해 삶의 굴곡을 이야기 한다. 가파른 언덕길을 힘겹게 오른 후에야 가려졌던 그 길의 끝자락이나 흐름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림속 등장하는 촌로(村老)의 힘겨운 걸음은
작가의 의도한 여정의 드라마틱한 삶을 표현하고 걸음이 멈쳐질 언덕 너머의 원경(遠景)은 청회색조의 색감 과 강렬한 빛의 표현으로 그 삶의 여정 이후 상상의 미래를 예측
해준다.
산동성가는길. 54x100cm 2013년작.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