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 - 김선 초대전 205. 4. 16 – 5. 6 장은선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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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 달항아리-세상을 품다 106.0x92.0cm
Mixed media
모든 과정을 딛고 나온 ‘빙렬 드로잉(split drawing)’을 감각으로 연결한 작품들, 자신의 한계성
을 인지하고 깨달은 철저한 노동은 이제 작가에게 달항아리가 시대를 넘나드는 자유의 상징임을
확인시켜 준다.
비균제와 균제의 조화, 달항아리가 주는 풍요
넉넉한 가을의 풍요를 닮은 김선의 달항아리, 보름달과 닮았지만 완전한 구형이 아닌 그 자연스
러운 비대칭은 ‘개성어린 오늘의 풍요’와 닮았다. 이른바 비균제성. 이는 미술사학자 우현 고유섭
(又玄 高裕燮, 1905~1944)이 한국미의 정점으로 꼽은 요소 중 하나로, 정확하지 않아 더욱 매력
넘치는 한국 특유의 미감을 보여준다. 얼핏 보기에 찌그러진 듯 보이는 김선의 달항아리는 정제
된 빙렬의 시선을 담아 자유와 안정감을 동시에 유발한다. 작가의 비균제가 그럼에도 균형감각
으로 느껴지는 까닭은 ‘달항아리’가 가진 본체의 여유 때문일 것이다. 21세기 한국의 대표 브랜딩
으로 손꼽히는 달항아리는 상당히 많은 작가들이 선택한 소재이다. 하지만 다양한 달항아리 작
가들과 차별성을 둔 김선의 작업은 조선백자가 가진 균제성을 작가의 노동으로 연결해서 더욱
가치가 있다. 달항아리의 공식 학명은 백자대호(白瓷大壺)이다, 달항아리라는 정겨운 이름을 붙
인 이는 앞서 비균제성을 언급한 고유섭 선생이다. 하이얀 자기(磁器: 사기 그릇)가 달을 품었다
는 의미다. 무광무색(無光無色)의 순수로 느껴지지만, 모양새와 색감이 같은 달항아리는 단 한
개도 없다. 미술사학자 김원룡(三佛 金元龍, 1922~1993)은 달항아리를 다음과 같이 평한다. “원
은 둥글지 않고 면은 고르지 않으나, 물레 돌리다 보니 그리되었고, 바닥이 뒤뚱거리나 뭘 좀 괴
어 놓으면 넘어지지 않을 게 아니오. 조선백자에는 허식이 없고 산수와 같은 자연이 있기에….”
달항아리에 담긴 무심(無心)의 미학은 비틀린 비대칭과 만나 21세기의 풍요와 맞닿는 것이다.
김선의 달항아리에 있는 유백색의 뉘앙스는 크게는 다섯에서 좁게는 셀수 없을 만큼의 다양한
뉘앙스로 우리와 만난다. 실제 수려한 곡선과 아름다운 유백색을 지닌 달항아리는 평균 45~55
센치 사이를 빼어난 수작으로 말한다. 조선 도공의 달항아리를 소유할 수 없다면, 작가의 현대화
된 균형 미감을 풍요의 에너지 속에서 소장해 보는 것이 어떨까. 김선의 달항아리는 빙렬감각을
우리의 인생 드로잉처럼 새겨넣은 ‘백색 미감의 세련된 조화’가 아닐까 한다. 만인(滿人)을 비추
는 만추(晩秋)의 감각 속에서 달빛처럼 넉넉하고 귀한 ‘김선의 달항아리’와 만나기 바란다.
안현정 (미술평론가, 예술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