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 - 샘가 2024년 5-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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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가로 향하는 이들에게
홍재를 기리며, 뜻을 이으며
2024년 2월 1일 새벽 6시 30분, 꽉 채운 40년 동안 생명의 샘가를 이끌어 오신 이
영훈 목사님이 소천하셨습니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정신을 차릴 겨를도 없이 지내
는 동안에도 무심한 시간이 흘렀습니다. 새로운 샘가를 출산하면서 우리의 자리를
돌아봅니다. 감사와 애석함 뒤섞여 있는 곳에 여전히 이어가야 할 사명이 이정표
처럼 서있습니다. 가신 그 분보다 잘할 수 있을까? 하다못해 그처럼 할 수는 있을
까? 바위 같은 부담감이 가슴 위에 얹혀 있습니다.
그리고 고 이영훈 목사는 어떤 사람이요 어떤 목사였을까 생각해봅니다. 지난
2021년 고인께 호를 지어 선물한 적이 있습니다. 명(名)이 부모님이 앞으로를 기
대하며 지어주는 이름이라면, 호(號)는 본인이나 후배가 살아온 모양을 기리며 짓
는 이름이라 했기에 사랑받던 제자로서 호를 지어드렸습니다. 그 때 <홍재>라는
호를 지어드리며 적었던 아래의 글이 그를 보낸 지금, 가장 걸 맞는 그리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영훈 목사는 스스로를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는 작은 사람이었다.”고 회상한다. 하지
만 그의 곁에서 흘려간 시간들을 되짚어보니 그것은 그를 지키는 하나님의 방법이었다.
하나님은 그의 작은 삶으로 다른 누구와 경쟁하지 않고, 척을 지지 않으며 무심하게 은
혜를 흘려보낼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들어가셨다. 말을 아낄 줄 알게 하셨고, 자기를 감추
고 멈추어 서서 기다릴 줄 알게 하셨다. 그러한 넓은 성품이 큰 소리를 거리에 내지 않
고, 화려한 언변과 이력으로 사람을 유혹하지 않으나 많은 사람을 그의 곁에 머무르게
하였다. 이것이 그를 빚어오신 토기장이 하나님의 방법이었다.
하나님은 그로 하여금 한 자리에 끈기있게 서서 선한 일을 붙잡게 하셨다. 스스로 작은
사람이었으니 많은 일, 더 큰 일을 탐하지 않았다. 또 세월이 흘렀다. 부산했던 세상은
돌고 돌아 제자리로 돌아왔다. 빈손으로 돌아온 세상은 여전히 자기 자리를 묵묵히 지
키고 이는 이영훈 목사로 인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희망을 본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목
사로서 이영훈 목사는 크지 않고 화려하지 않기에 조잡하지 않다. 마치 이조백자와 같
이 은근하게 흘러나오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
홍재는 정조로 인해서 유명한 단어가 되었다. 누구도 환연하지 않는 처지에서 조선의
22대 임금이 된 정조는 등극후에도 자신을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대통합의 정
치를 이루어 조선 후기 최고의 성군이 되었다. 누구보다 개혁적이었으나 아무도 적으로
돌리지 않았다. 그리하여 한 사람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유익을 얻었고 나라는 재건되
었다. 이런 삶을 살게 한 정조의 호가 홍재이다.
한 사람이 홍재로 살면 세상은 바로서고 모든 사람들은 행복해진다. 이영훈 목사의 지
난 78년을 돌아본다. 정조와 같이 작은 자로 시작하였지만, 멀리 있는 사람도 그의 삶과
목회에 고개를 끄덕인다. 모든 사람이 그를 멀리하지 않는다. 어느덧 큰 나무가 되어 많
은 사람에게 유익한 그늘이 되었다. 그러므로 홍재 두 글자로 그의 큰 삶을 기리고 그에
게서 흐르는 하나님의 깊은 은혜를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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