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 - 강명자 작가 (1968-2021) 화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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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연 강명자 화업 40년 : 구상과 추상의 만남
작가가 꽃밭과 달 항아리에 집착하여 이루어온 화풍의 근원은 작가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보면 알 수 있다. 향촌에서 자라난 작가는
꽃과 새를 좋아하던 선친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회상한다. 그리고 그 추억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던 정서를 이끌어 낸다. 작
가는 집 뒤뜰에 자리한 장독대의 항아리에서 어머니의 손길과 정겨움을 느끼며 살아왔다. 고향의 장독대 주변에 흐드러지게 피어있
던 꽃들과 함께 어울리는 도자기의 이미지들은 작가의 그리움이며 향수이다. 이렇듯 고향을 회상하는 작품들은 조상의 지혜와 슬기
가 담긴 도자기의 신비스런 선에다 화려한 한련화의 자연미를 영롱하고 아름답게 표현한 것들이다.
작가의 40년 화업 가운데에서, 2015년에서 현재까지의 최근작품에 초점을 맞추어 그 특징에 대하여 논하고자 한다. 우선 첫째로,
단순하게 꽃을 그리고 그것에 오버랩 하여 여체를 선으로 그리는 경우; 둘째로, 구도 상으로 화면을 정 중앙에 위치하게 하여 항아리
나 도자기를 설정한 뒤, 중앙에 집중되어 있는 화면의 안쪽에 그림을 그리는 경우와 중앙에 있는 도자기를 단순화하고 배경에 그림
을 그리는 경우; 셋째, 모시 천과 같은 조각보를 배경으로 두고 도자기나 꽃을 그려 넣는 경우; 넷째로, 금속판에 도자기와 꽃을 그려
넣는 경우 등 크게 네 가지로 구분된다.
첫 번째 사례로서 단순회화 형식의 경우, <봄나들이>와 같은 일반적인 화풍이 존재하지만 이 그림도 아주 정교한 세밀 화풍과 변화
무쌍한 배경을 현란하고 화려한 색상과 필치를 사용하여 그리고 있다. <사랑>의 경우는 중앙에서 커다란 붉은 꽃이 좌측 하단에 그
려지며 그것에 더하여 섬세한 대여섯 개의 꽃이 가장자리에 그려져 있는데, 장엄한 꽃잎이 화면의 좌하부에서 우상으로 마치 붉은
융단이 휘날리듯 드라마틱한 화면이 설정된다. 또 다른 유형으로 우리나라의 병풍이나 ‘일월오봉도’와 같은 궁중화풍의 물결을 그리
는 겹친 원형의 도안을 화폭에 담는데, 작품 <부귀영화>와 같은 사례가 그러하다. 아울러 <이브의 신비>와 같은 경우는 싱그러운
꽃과 여체가 어우러지는 그림인데, 여성 누드의 뒤태와 꽃의 실루엣이 절묘하게 어우러지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두 번째 사례로서 <항아리, 꽃, 여인의 만남> 시리즈의 경우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작품들은 전반적으로 단순한 단일 톤의 배경을
하고 있으며, 그 위에 디테일한 백색 선으로 도자기 혹은 항아리 등의 실루엣에 그려지는데, 그것을 통해서 하나의 인큐베이터와 같
은 소우주를 표방하는 것이다. 그 우주 안에 아주 절제된 이미지들이 담겨지는데, 그것은 여인, 꽃, 자유의 여신상, 유머러스한 캐릭
터……. 등이 등장함으로 작품 속의 도자기들은 온갖 아름답고 보석 같은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이렇게 화면을 설정함으로
써, 자신이 바라보는 세계관이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하나의 만남의 장으로 유도하는 특징을 보여준다.
세 번째 사례로서 <모시천, 꽃밭, 항아리의 만남>시리즈의 경우, 여성스럽고 소박한 노랑, 초록, 분홍, 주홍. ……등 파스텔 톤의 색상
이 담겨진 우아하고 소박한 모시의 질감을 기초로 한 조각보를 배경으로 추상적인 공간을 설정하고, 꽃밭에서 포착한 이미지들을 섬
세하게 그려 넣거나, 꽃 항아리와 같은 이미지들이 어우러지게 한다. 이 시리즈의 그림들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모시 조각보에
스티치 기법과 한국채색화의 기법으로 여러 종류의 꽃들을 담아낸 작품들이다. 특히 이 시리즈의 경우, 작가가 갖고 있는 서민적인
삶이 소박하게 담겨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흠뿍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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