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 - 강명자 작가 (1968-2021) 화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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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한 안온한 회상과 기록, 그 건강한 작업에 대하여
작가 강명자의 작업은 화훼류를 소재로 한 채색화의 형식을 지니고 있다. 대상에 대한 진지한 접근과 섬세한 관찰을 통해 포착된 이
미지들을 차분하고 안정적인 색감으로 화면에 수용해 내는 작가의 작업은 원칙적이고 아카데믹한 면이 두드러진다. 대상에 대한 변
형이나 왜곡에 앞서 그것이 지니고 있는 객관적인 조건들에 성실히 반응하며, 이를 표현함에 있어서도 대단히 진지한 집중과 몰입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러한 몰입과 집중이 화면에 과도한 표현으로 표출되기도 하지만, 그 본질 자체는 대단히
건강한 것이다. 작가가 취하고 있는 채색화는 반복적인 작업 과정을 통해 구현되는 특유의 깊이 있는 색채미가 특징이다. 이는 여타
재료와는 달리 채색화가 지니고 있는 특징이자 장점이라 할 것이다. 작가의 작업은 이러한 채색화의 원칙적인 특징과 요구에 충실한
것이다. 작가의 작업에서 느껴지는 원칙적인 아카데미즘은 바로 이에서 기인하는 것이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화훼는 이미 오랜 기간에 걸쳐 회화의 소재로서 보편적으로 다뤄져 왔던 것이다. 그중 동양에 있어서 화훼는 단순한 대상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인간의 덕성을 은유하는 상징으로 즐겨 다뤄져 왔다.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모란이나 지조와 절개를 나타내는 사군자 등
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이에 반하여 작가가 화훼를 대하는 입장과 시각은 또 다른 것이다. 작가는 일상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이나 화초들을 차분하고 진지한 시각으로 관찰하고, 그 결과를 객관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시각적 쾌감을 유발한다. 꽃
특유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자태는 물론, 그것이 지니고 있는 건강한 생명력의 표출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다분히 합리적이고 객관
적인 시각을 전제로 한 현대적인 의미의 소재와 표현의 확장 결과에 따른 것이다. 꽃이 지니고 있는 기성의 의미에서 벗어나 꽃 자체
가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을 주목하고, 이를 객관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작가 개인의 감정을 표출하는 작가의 작업 방식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옥잠화, 달맞이꽃, 그리고 찔레와 함박꽃 등 작가가 취하고 있는 꽃들은 화훼 표현에 있어 일반적인 것들이다. 작가는 이들을 섬세한
관찰과 표현으로 일일이 어루만지며 화면 위에 안착시킨다. 꽃잎과 꽃술의 표현은 물론 잎사귀 하나하나에서까지 전해지는 성실하
고 진지한 작업 자세는 작가의 일관된 작업 방식이다. 화면은 원칙적으로 꽃의 객관적인 양태에 충실한 것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색채에 대한 주관적 해석이 가미된 함축적인 표현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는 작가의 작업이 육안에 의한 대상의 개관적 재현에서 점
차 주관적 해석이 가미된 해석과 표현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암시하는 것이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의 명제로 그리움, 기다림,
미소 등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단어들을 취하고 있음은 작가의 관심이 단순히 대상의 객관적 재현 단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감성과 정서의 표출에 이어지고 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이는 객관적인 구상 작업의 발전에서 필연적으로 겪게 마련인 주관화,
개별화의 과정이라 해설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가 취한 꽃은 일반적인 것이지만, 작가는 이를 통해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던 아득한 이야기들을 이끌어낸다. 그
것은 특별한 가치를 강조하는 상징으로서가 아니라 작가가 취한 제목과 같은 그리움, 혹은 기다림과 같은 극히 내밀하고 다감한 정
서이다. 작가는 꽃들을 통해 자신의 어린 시절과 그 속에서 이루어졌던 부친과의 소소한 추억들을 길어 올림으로써 주관화, 개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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