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 - 강명자 작가 (1968-2021) 화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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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말
나는 어려서부터 유난히 꽃을 좋아했다. 시간만 있으면 야생화를 찾아 산으로 들로 다녔다. 어른이 되어서도 꽃은 내 삶의 큰 화두였
다. 특히 들꽃들은 강인한 자생력을 뿜어내면서 나를 매료시켰다. 주말이면 사진기와 스케치북을 가지고 들꽃들을 관찰하였다. 캔버
스에 스케치로 채색하면서 내 생의 많은 부분을 꽃들과 함께 보냈다. 내가 주로 살아왔고 살고 있는 강원도와 경기도 주변의 산에 자
라는 산나물과 들꽃들은 내 시선과 발자취의 목록에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성경에 “솔로몬왕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들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했다(마태복음 6:29)”고 했다. 세상의 온갖 부귀영화보다 더
고귀한 들꽃의 영화... 나는 그 들꽃처럼 아름답고 안온하게 살기를 소망했다. 내 아이들도 나처럼 꽃을 좋아하고 정서적으로 안정되
게 자라주었다.
돌이켜보면 30여 년 간의 교육공무원 생활을 보람되게 마칠 수 있었던 것은 교직생활 내내 쉼 없이 그림에 몰두하면서 다른 잡다한
욕망을 비워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꽃만 보면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리워진다. 아버지는 유난히 꽃과 새들과 동물들을 좋아하였다. 해마다 봄이 되면 화단에 여
러 가지 꽃씨를 심어서 양귀비 한련화 채송화 분꽃 나팔꽃 등 예쁜 꽃들을 보게 해 주셨고, 바위와 나무뿌리에 국화 분재를 만드시고,
금계 은계 공작새 카나리아들도 직접 부화시켜 기르셨다.
할머니는 쌉쓰름하고 하얀 진이 나오는 양귀비 새싹과 매콤한 한련화 새싹으로 쌈을 싸주시며 “여름동안 배앓이를 안 하려면 먹어야
한다”며 억지로 먹이던 모습이 떠오른다. 모두 이제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들이다.
나는 이런 내 어릴 적 아름다운 추억들을 꽃들과 함께 되살려 보려고 노력하였다. 꽃을 소재로 한 채색화에 인물과 한국 전통문양을
융합시키고자 노력한 한국화 장르의 작품들을 이 도록에 모았다.
2021년 6월
소연 강 명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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