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1 - 권숙자 개인전 2025. 10. 1 – 11. 15 권숙자안젤리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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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된 길에 있어서 제2의 변신이라고나 할 자리바뀜이 근작으로 나타나고 있다.
‘90년대에 들어서서 화가는 새롭고도 기발한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창출하여 제시한다.
이제껏의 관조적인 자연의 너울을 거두고 내면적으로 표백된 자연은 상상력의 환기장치에 의해 전혀 별개의 환상공간으로 바
뀐다.
한마디로 꿈의 세계라고나 할 수 있을 이 환상공간은 화가의 내면적 이상경(理想境)이기도 하다.
거기에 종교적 열원이 개입되기도 하면서 점진적으로 전개되는 파라다이스의 점입가경(漸入佳境)의 세계, 어디까지나 심안(心
眼)으로 포착할 수 있는 초절적인 피안의 세계인 것이다. 양식적으로는 일체의 사실적인 묘사적 기법을 배제하고 치졸하다고
할만큼 알카익한 필법을 구사한 소박화의 그림이다.
산이나 나무, 인물과 동물 등이 도시적으로 배열되고 있으면서 그것들은 모두 현실적인 풍경으로 파악되지는 않는다. 벌거벗
은 여체(사람)의 무리가 들어앉아 있으며 해와 사슴과 간혹은 교회도 보이는 심상적(心象的) 풍경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주
제의 화면들이다. 모든 생명을 가진 것들을 찬미하며 그것들이 환상적인 하나의 축(軸)으로 엮어진다. 민화적인 치기와 더불어
은유적인 상징성이 함께 담겨져있다.
화가는 근작을 통해 모종의 성서적 암시같은 것을 시도한 것인지도 모른다.
일종의 자기혁신이나 다름없는 이 새로운 [선택된 길]이 앞으로 어떻게 이어질지는 지켜볼 일이다.
파격으로까지 이끌려진 작품양식의 바뀜은 자기혁신의 일차적인 관문에 불과하다.
화가의 작품세계는 한 의욕적인 도전에 직면해 있다. 그 작품기저를 흐르고 있는 탐구적 열성과 변모의 의지는 퍽이나 대견해
보인다.
다분히 문학적인 성향을 겸한 화가의 근작 작품세계는 그의 다음과 같은 내면적 절규에 답한다.
[사랑하는 만큼 태어나고 / 태어나는 만큼 절망하고 / 절망하는 만큼 죽어가고 / 죽어가는 만큼 부활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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