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 - 권숙자 개인전 2025. 10. 1 – 11. 15 권숙자안젤리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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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리 성城 이야기 :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로
1. 열 그루의 나무에 달린 3650개의 <문화의 등불>을 밝히며
2015년 5월 16일, 여왕의 계절, 왕관을 쓰고 안젤리 미술관이 세상에 얼굴을 내밀었다. 문화 확산이라는 소박한 소망을
가지며.
세상에 우뚝 세워진 미술관은 설치 미술이라 여기며, 당시는 작품에 집중할 수 없었기에 건물에 래핑Wrapping 작업으로
시선을 끄는 크리스토Christo의 작품을 떠올리며 애써 나의 건축 작업도 예술의 한 분야라고 사고를 전환했다. 그렇게
안젤리 성城은 질퍽거리던 진흙 속을 뚫고 새싹이 돋듯, 세상에 세워졌다. 적어도 나에게는 대형 작품이 되자고 소망했던
이 미술관이.
그 대작을 시작하고 끝낼 때까지는 혼자의 노력이 아닌, 반려자인 남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고뇌, 눈물, 갈등, 번뇌, 회의라는 의상을 수시로 갈아입으면서 10여 년의 세월을 견뎌 온 순간 순간이었다.
간이역장처럼 오는 이, 떠나는 이에게 미소 담아 “안녕”을 반복하고, 뒤돌아서는 나의 모습은 문화 향유에 대한 대중의 싸늘한
태도에 좌절하며 밤을 지새는 한숨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서글픈 애환조차도 역사나 전통의 한 자락을 구성하는 붓 자국일 수 있다고 여겼다. 한 발자국,
또 한 발자국씩 <문화 확산>에 초점을 맞추며 진정성을 무기로 대중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다짐을 반복했던 것이다.
그렇게 되뇌이던 <한숨의 강>과 미래를 향한 <희망의 강>이 만나며 10여 년 세월이 흘렀고, 사명감으로 이어진 보람 또한
나무가 자라 듯 성장했다. 그 세월 동안 나는 열 그루의 나무에 사명감이라는 잎을 피우며 3650개의 <문화의 등불>을
안젤리 성城 사이 사이, 구석구석을 밝히며 봄을, 여름을, 가을을, 겨울을 보낸 것이다.
2. 또 다른 10년을 부를 수 있다면
열 그루 나무에 3650개의 <문화의 등불>을 달고 미래의 나무에 소망을 키우면서 수 많은 다양한 사람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내 삶의 형태나 색깔도 안젤리 성城과 더불어 나이를 들어가면서 참된 가치의 삶과 예술은 무엇일까 숙고하는 순간순간이었다.
그 무게를 어깨에 메고 어렵게 운영하는 나에게 “크루즈 여행이나 하며 편히 살지, 왜 고생하느냐”며 후렴 부르 듯 뇌이는 사람
들의 목소리는 새의 노래처럼 연이어 들렸다. 그때마다 일관된 대답은 “생존보다 존재하고 싶기에” 미소 담아
조심스럽게 답하는 모습이었다.
사람마다 존재 의미는 각자 다르겠지만, 이미 정해진 길이라면 헤쳐 나가야 하고, 상황을 승화시키며 극복하는
힘을 길러 실행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아내를 위해 선물을 주고 떠난 그를 향한 의리와 사랑이었다.
어느 때는 좌절로 등불이 꺼져 암흑이 되기도 했지만, 정신을 가다듬어 눈뜨면 햇살 덮인 온누리는 살아 있기에 느낄 수 있는
희비애락喜悲哀樂의 거리였다. 그런 거리가 곧 삶이었다. 안젤리 성城에 대한 첫사랑을 고귀하게
바치며 스스로 택한 길이기에 진심을 녹여 최선을 다하는 방법밖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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