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 - 이원태 초대전 2023. 3. 29 – 4. 15 장은선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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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태의 회화

          경계를 넘어 경계를 열고, 차원을 열고, 세계를 여는

                                                      고 충 환(Kho, Chung-Hwan 미술평론)



          작업에 대한 작가들의 착상은 실로 다양한 곳으로부터 온다. 우주와 자연, 일상과 사회, 역사와 일화, 사건과 사고,
          가상과 실재, 도덕과 윤리, 태도와 관념, 수행과 이념, 우연과 필연, 욕망과 상상력, 유희와 놀이, 자기반성적 사유와
          때로 미술사적 형식논리와 같이 그 출처는 삶의 질이 복잡한 만큼이나 다종다양하고 예술에 대한 정의가 무색한 만
          큼이나 종잡을 수가 없다. 생각하는 동물답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착상의 대상이 될 수가 있다. 웬 착상
          이냐고 하겠지만 작가들의 작업이 어디서 어떻게 시작됐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고, 경우에 따라선 작가들의 작업
          을 이해하는 관건에 해당하는 경우도 없지가 않다.

          이원태의 작업에 대한 착상은 좀, 꽤나 이례적이다. 굳은살이 그것이다. 굳은살? 언젠가 작가는 발목 부위의 복숭아
          뼈(복사뼈)에서 떨어져 나온 굳은살을 본다. 굳은살이 잘 생기지 않는 부위지만, 특정 부위를 집중적으로 반복 사용
          하면 모든 신체부위는 원칙적으로 굳은살이 생길 수 있다. 도통한 스님들이 한 자세로 수행에 정진한 결과 사리가
          생기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피부사리, 몸사리, 살사리라고나 할까.
          여기서 굳은살은 처음부터 굳은살이 아니었다. 속살이 속살을 보호하기 위해서 굳은살이 된 것이다. 그걸 보면서
          작가는 그게 꼭 자기를 닮았고, 자신의 삶을 닮았고, 존재론적 상처를 닮았다고 생각한다. 나약한 존재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궁리하고 몸부림친 흔적이며, 주체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부대낀 상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
          다고 생각한다. 의학적으론 단순한 죽은 세포에 지나지 않지만, 그 속엔 말하자면 자기가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희생하는 존재일반의 생리(생존본능?)가 담겨 있다고 본 것. 자기연민이고 존재일반에 대한 연민이다. 작
          가의 작업은 바로 이렇듯 자기 몸에서 떨어져 나온 껍질에서 착상되었고, 그 의미 그대로 존재에 대한 연민으로 확
          장된다. 작가의 작업이 몸에 대한 남다른 사유로부터 유래한 것임을, 존재의 존재론적 조건에 대한 자기반성적 사
          유에 연유한 것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작가는 거칠고 질박한, 갈라지고 터진 부위가 비정형의 패턴을 이루고 있는 소나무 껍질에서 굳은살과의 유
          사성을 본다. 형태적인(아니면 질감상의) 유사성이며 특히 의미론적인 유사성을 본다. 이를테면 소나무 껍질이 처
          음부터 껍질은 아니었다. 속살이 속살을 보호하기 위해서 껍질이 되었다. 그 꼴이 꼭 굳은살 그대로다. 속살을 보호
          하기 위해서 속살이 굳은살이 된 것처럼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서 나무가 스스로 껍질이 된 것. 그렇게 나무껍질이
          특히 소나무 껍질이 작가의 작업 속으로 들어온다. 처음에 작가는 나무껍질 그대로를 재현하는데, 그게 좀 예사롭
          지가 않다. 그린다고만 할 수도 그렇다고 만든다고만 할 수도 없다. 그리는 것도 만드는 것도 아닌, 어쩌면 그리기와
          만들기가 혼재되면서 그리기와 만들기를 넘어서는 전혀 새로운 발상과 과정과 방법을 예시해준다.

          이를테면 붓(그리고 때론 나이프?)을 이용해 투명 유리판 위에다가 나무껍질 모양으로 물감을 얇게 편다. 일종의
          물감 막을 형성시키는 것인데, 그게 적당하게 굳으면 유리판으로부터 떼어내 캔버스에다 옮겨 붙인다(콜라주?). 그
          렇게 옮겨 붙이면서 막 위에 막을 쌓는다. 실제로 소나무 껍질을 보면 하나의 껍질덩어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얇
          은 막이 층층이 중첩된 구조를 이루고 있다. 나이테와는 또 다르게 시간의 켜를 쌓고, 보호막을 쌓고, 상처를 쌓는다
          고나 할까. 그렇게 중첩된 나무껍질 형상을 화면 속에 병치시켜 하나의 유기적인 전체형상의 나무껍질을 이루도록
          조형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하나의 단위구조를 반복 병치시켜 부분과 전체가 유기적인 관계 속에 어우러지게 한 것
          인데, 여기서 유의할 점은 그 대상이 다름 아닌 자연인 까닭에 기계적인 반복구조와는 다르다는 사실이다. 자연엔
          심지어 반복구조를 취할 때조차 사실은 같은 것이 하나도 없고, 실제로 작가의 작업 역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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