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 - 이원태 초대전 2023. 3. 29 – 4. 15 장은선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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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껍질을 강조할 요량으로 대비를 도입하는데, 대개는 그 속이 빨간 홍송 혹은 적송의 속살을 거친 껍질과 대
          비시킨다. 이렇게 해서, 이를테면 거친 나무껍질과 부드러운 속살을 대비시키면서, 질감을 대비시키고 색감을 대비
          시키면서 겉과 속, 안과 밖이 대비되는 상황논리를 열어놓는다. 겉과 속 그리고 안과 밖이 대비되는 상황논리는 말
          하자면 비록 나무에 대한 관찰에서 유래한 것이지만, 그 자체가 이분법적인, 이중적이고 다중적인 존재일반의 존재
          론적 조건에 대한 유비적 표현으로 확장된다.

          여기서 그 자체 주제의식이랄 수도 있는 상황논리는 재차 이중적이다. 이를테면 겉 다르고 속 다른 자기 분열적이
          고 이율배반적인 존재조건을 유비하면서, 동시에 그 자체를 인정하는, 이를테면 여하한 경우에도 하나의 일의적인
          의미로 한정되거나 환원되지는 않는 존재조건을 비유한다. 몸으로 치자면 속살도 몸이고 굳은살도 몸이다. 나무로
          치자면 속살도 나무고 껍질도 나무다. 존재로 치자면 겉(페르소나 혹은 외면)도 존재고 속(아이덴티티 혹은 내면)
          도 존재다. 그렇게 몸에 대한 그리고 나무에 대한 관찰에서 시작된 작가의 작업은 종래에는 존재의 이중성에 대한
          인정과 연민 앞에 서게 만든다.

          여기까지가 몸에 대한 그리고 나무에 대한 관찰에서 유래한 존재의 이중성을 예시해주는 경우다. 그리고 작가의 작
          업은 확장국면에 들어선다. 단순히 나무며 껍질을 매개로 겉과 속을 대비시키는 것에서 나아가 보다 추상적인 경우
          로, 그 자체 자족적인 형식논리를 전개시키는 경우로 확장된다. 작가의 작업은 기본적으로 하나의 단위원소, 모나
          드, 단자가 반복 중첩되면서 이러저런 형태를 만드는 모듈구조를 취하고 있고, 이런 모듈구조가 임의적이고 자의적
          인 형태 변주를 가능하게 해준다.
          이를테면 일종의 만든 혹은 제작된 오브제로 명명할 수 있는 단위원소를 화면에 병렬시켜 추상화면을 재구성하기
          도 하고, 무슨 모를 심듯 단위원소를 촘촘하게 세워 심어 추상적인 형태를 만든다. 무슨 피막 같기도 한 얇은 물감
          막을 중첩시켜 만든 오브제를 재구성하는 방법과 과정을 통해서 표면질감이 두드러져 보이는 화면을 구성하기도
          하고, 형태가 화면 위로 돌출돼 보이는 일종의 저부조 형식의 화면을 구성하기도 한다(보통 닥종이를 이용한 저부
          조 형식의 작업은 봤지만, 작가의 경우는 좀 이례적인). 때로 돌출된 화면이 빛에 반응하면서 보는 각도에 따라서
          미묘하게 달라져 보이는 또 다른 감각경험(시각적이면서 동시에 촉각적인?)을 예시해주기도 한다. 여기서 이러저
          런 형태를 구성하는 단위원소에 해당하는 오브제 자체는 거칠고 질박한 나무껍질의 표면질감을 연상시키면서, 동
          시에 보기에 따라선 일일이 두드려 만든 단조처리한 철 조각의 표면질감을 떠올리게 한다. 질감이 강조되는 것도
          그렇거니와 더욱이 저부조 형식의 작업이 평면과 입체,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넘나드는 또 다른 형식적 성취를 예
          시해준다. 아마도 조각 베이스를 가지고 있는 작가의 이력과 무관하지가 않을 것이다.

          그런가하면 때로 단위원소를 얼기설기 엮어서 구조적이고 구축적인 화면을 재구성하기도 하는데, 구조가 느슨하
          기도 하고 촘촘하기도 한 다양한 표정의 화면을 연출한다. 단위원소와 단위원소 사이에 일종의 빈 공간을 마련하는
          것인데, 때로 상당부분의 공간을 비워내 허허로운 화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여기서 단위원소에 해당하는 오브제 하
          나하나는 마치 먹그림에서의 필이며 선과도 같고, 더욱이 여백에 대한 공간 감각이 한국화 베이스를 가지고 있는
          작가의 또 다른 이력을 떠올리게 만든다. 각각 한국화 베이스와 조각 베이스가 그 경계를 허물고 융합되면서 작가
          만의 독특한 회화적 아이덴티티로 정착되고 승화된 보기 드문 경우로 볼 수가 있겠다.

          이 일련의 그림들을 작가는 D(dimensional) painting이라고 부른다. 차원회화? 차원을 여는 회화? 다중 혹은 다층
          차원회화? 아마도 어느 정도 이 모두를 함축적으로 의미할 것이다. 상호간 이질적인 차원이, 이를테면 회화적 평면
          과 조각적 입체, 추상적 형식논리와 형상적 재현논리, 그리고 의미론적으로 겉과 속, 안과 밖과 같은 이분법적 개념
          과 현상의 경계를 허물고 하나의 층위로 중첩된 회화, 경계를 넘어서 또 다른 경계며 차원을 여는 회화를 의미할 것
          이다. 그리고 상호간 이질적인 차원들이 하나의 층위로 중첩된 존재의, 삶의 알레고리를 의미하기도 할 것이다. 여
          기에 시간과 세월이 만들어준 결과 겹이며, 켜켜이 내려앉은 지층과 주름이 존재의 흔적이며 상흔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존재론적인 그림이고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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