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 - 김남표 개인전 2023. 5. 10 – 5. 30 나마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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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기 바로 직전의 모습이었다. 사람 또한 죽음으로 모든 것을 증명한다. 죽음으로써 살면서 겪었던 삶의 모든 사실과 삶의 총체적 믿음을 전한다. 그 믿음은 또 다른
양태의 믿음으로 유전된다. 때문에 이를 우리는 죽음의 불가능성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김남표 작가의 달밤과 해바라기는 의미로 이어진다. 달밤은 달 표면에 반사
된 햇빛의 흔적이다. 작가가 말하려는 세계는 다음과 같다.
우리가 보고 느끼는 감각과 지각, 그리고 사유할 수 있는 이성, 오성, 정신 등의 작용 너머로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우주(자연)의 원리가 있다. 이에 대해 우리는 두 가
지 반응을 보이며 살 수 있다. 우선 현상은 힘의 실체적 표현이기 때문에 현상 너머의 세계는 무시해야 한다는 태도이다. 또 하나는 우리가 보는 현상은 우주의 지극
히 작은 일부분이기 때문에 미지의 세계에 늘 겸허해야 한다는 태도이다. 전자는 닫힌 태도이며, 후자는 열린 태도이다. 전자는 세계를 ‘site’나 ‘scene’으로 바라본다.
후자는 세계를 ‘place’로 본다. ‘place’는 사람의 태도나 관점, 이해의 수준에 따라 변환자재로 변화하는 신성한 경지의 세계이다. 초탈(超脫)의 세계이다. 그동안 회화
가 경주했던 세계는 위계적 초탈의 경지였다. 우리는 이를 수직적 숭고(vertical sublime)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영국 출신의 철학자 필립 키처(Philip Kitcher, 1947-)
는 동시대에는 종교에서 말하는 수직적 숭고보다도 수평적 숭고를 실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완벽하게 세속적인 사람은, 자기 삶의 목적을 어렴풋이 이해되는 초월적 실체와 연관된 수직(vertical)으로 이해하지 않고, 개인의 개체적 실존보다 훨씬 광대한 자
연 세계와 연결된 수평(horizontal)을 통해 해석할 것이다. 자신이 세계의 부분이라는 내밀한 인식을 통해서, 그리고 더욱 중요한 사실은 그 세계란 다른 사람의 삶을
포함하고 있다는 인식 속에서, 당신의 행위는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며, 그러한 현현(the epiphany)이야말로 보다 넓은 연결의 풍부한 원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3)
김남표 작가는 종교적 차원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회화에서 숭고는 영원해야 한다고 믿는다는 점에서, 김남표는 본질주의자이며 진정한 회화주의자이다. 현실
에서 숭고를 느끼고 찾아야 한다고 믿는 점에서 수평적 숭고의 실천자이다. 이것이 작가가 전대 회화의 역사와 회화가들에게 물은 질문하고 그들로부터 얻은 대답
이다. 김남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세계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수평의 세계 또한 끝이 없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이 진 명 (미술비평ㆍ미학ㆍ동양학)
3) Philip Kitcher, Preludes to Pragmatism: Toward a Reconstruction of Philosophy(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2), p. 284.: “Thoroughly secular people can interpret the
purpose of their lives, not through some ‘vertical’ links to a dimly understand transcendent reality but through ‘horizontal’ connections to a natural world that is vaster than their
own individual existence, Through your implicit recognition of yourself as part of world, including most importantly other human lives, on which your actions make an impact,
the epiphany can be a rich source of broader connec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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