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0 - 문득(聞得)_마음을 그릴 때 꼭 들어야 할 작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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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이 연
따스한 트라우마
웃는 사람. 잘 웃는 사람 그것은 나를 대표하는 이미지 이자 수식어처럼 붙는 말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이유 없이 눈물이 나거나 웃음
이 사라지거나 좀처럼 의욕이 나지 않았다. 우울증인가 싶었지만 그도 아니었다. 하루가 모여 한 달이 되고 한 달이 일 년이 넘을수록 좀처
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여전히 만나는 모두가 밝은 사람으로 보아도 종이가 물을 머금어 가듯, 스며드는 어둠이 있었다. 세상에
서 제일 아끼는 나에게 조금 더 편안한 하루를 선물하고 싶어서, 그리고 나를 힘들게 하는 요소의 답을 찾아 해방을 꿈꾸며 시작한 것이 미
술치료였다. 미술치료 대학원에서 공부에 전념하여도 좀처럼 답이 나오지 않는 갑갑함이 가득할 때 임상실습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나는
기억 속 저변에 깔린 ‘트라우마’가 그 이유였다.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며 ‘개인의 평온’을 위해 애쓰는 내담자를 보며 깨우쳤다.
연이은 가족의 죽음을 곁에서 목격하며, 죽음을 앞둔 이에게서 볼 수 있는 삶에 목마름을 보았다. 하늘에 온마음을 담아 기도를 하여도, 한
조각의 기적을 바라며 간절함이 불살라도 가족의 이별을 피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중한 기억들보다 마지막의 모습이 잔상
으로 오래 남아 나 또한 같은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것이 나 스스로를 예민하게 변화시키고 노력의 헛됨은 무기력함으로 반응해 일상의
소중함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늘 두려웠다. 희망찬 미래보다 나의 불안한 앞날이 그려졌다. 트라우마로 인한 왜곡된 자아상은 현
실을 살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모든 걸 회피하려는 나를 보았다.
그렇지만 그 모습을 인정한 것이 내 건강의 시작이고 새 삶의 출발이었다. 기억 저편에 남은 어린 나를 만나 다독이고 죽음의 두려움과 나
를 구분시켜 주는 것. 나의 인생도 다르지 않을 거라는 불안함을 가진 나에게 스스로를 공감하고 위로하는 작업을 했다.
돌이켜 보면 삶을 살고자 하는 처절한 나의 열망이 오히려 나를 스스로 괴롭히고 힘들어 했음에 살아가는 모든 것을 예찬하였다. 나를 잠
식한 트라우마는 나를 다시 살게 한 건강한 트라우마로 명명하였다. 세상에 모든 삶은 위대하다. 삶은 온기를 가진다. 그리고 사람이 사람
에게 혹은 스스로에게 전하는 온기만큼 따스운 것은 없다. 두려움 속에서도 매 순간 온기를 전해준 주변의 따사로움을 기억하며 또, 그렇게
나를 스스로 안아주며 애쓰던 지나온 시간들을 기억하며 작품에 고이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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