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 - 문득(聞得)_마음을 그릴 때 꼭 들어야 할 작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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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온 정 주 영





           서늘한 유혹, 중독



           배가 고픈 날이 잦았다. 혼자 남겨진 내가 할 수 있는 건 간식을 넣어둔 작은 창고를 열어 초콜릿이나
           과자 따위를 먹는 거였다. 손에 닿는 대로 먹어치운 달달한 간식들은 위와 장을 훑으며 어두운 내 몸
           속을 돌아다니는 쓸쓸함을 마취시켰다.

           어른의 돌봄이 필요한 시간을 혼자 때워야 하는 일은 허기를 견디는 것보다 훨씬 허우룩했다. 밤이
           돼서야 밥벌이에 지친 몸을 뉘러 돌아온 부모는, 어린 나의 안전만을 확인하곤 이내 잠에 빠졌다. 온
           종일 그리웠던 엄마 등에 손을 가만히 댄 채, 행여 엄마를 깨울까 봐 하품 소리도 크게 내지 못하고 나
           도 동그랗게 몸을 만 채 잠이 들었다.

           어른이 되면 배고픔 따위는 대수롭지 않게 버틸 줄 알았다. 강렬한 식욕이 덮쳐도 의연하게 견딜 줄
           알았다. 혀뿌리까지 아리게 달달한 간식을 쟁여놓고 먹어도 헛헛함은 자꾸만 삐져나와 어지럽게 돌
           아다니며 나를 건드렸다. 담쟁이 넝쿨같이 온몸을 휘감는 허기는, 씹다가 잠이 들어 머리카락에 붙어
           버린 껌처럼 인생 전체에 쩍쩍 달라붙었다.


           프로이트가 말한 인간의 성욕동 중 구강기는 입술, 혀, 구강 점막 등 ‘입’에 집중된다(이창재(2010),
           프로이트와의 대화). 출생 직후부터 18개월까지의 아이에겐 이 세상을 음미하는 가장 중요한 창구 역
           할을 하는 것이 바로 입이다. 구강기 어느 시점에 머물러 버린 채로 내 몸은 시간만 축적해 버렸다. 원
           할 때 제대로 공급되지 않았던 엄마의 젖은, 일생을 관통하는 핵심주제가 되었다.


           마음의 구멍이 조금이라도 날라치면 더 자주, 더 격하게 고팠다. 입을 통해 목을 타고 흐르는 뜨겁거
           나 차가운, 화려하게 단순한 그것은, 나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마치 영혼의 진통제와도 같았다. 그것
           으로 인해 서서히 잠식되어 갔고, 이내 함몰될 것 같았다.


           부서지기 바로 직전, 가까스로 나를 주워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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