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 - 쌍교동 우아한 작당전21. 11. 11 - 11. 19 갤러리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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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교동의


          추억



          제갈경희




          산타 마리아호의 선부들처럼 불멸의 미와 진리를 찾아서 우                     주택 집에 돼지우리라니~~~. 골목길에 모여 살던 그 시절이
          리는 이 다도해의 기슭에 끝없는 무적을 울리고 기를 날린다’                   이웃과의 오고 감. 동네 아이들과의 놀이 그런 것들이 자연스
          이렇게 시작하는 이 상장을 받던 날이 선명하게 기억된다. 눈                   럽게 이루어졌던 것 같다. 해 질 무렵이면 집집마다 밥 먹으
          부시게 파란 가을날. 높은 구령 대위에 앞 언니들 뒤에 서있                   라고 아이들을 부르는 소리가 정겹던!  큰 신작로에 있던 성
          던 일학년 꼬마, 교무주임 선생님의 대독을 들으며 벅차오르                    당 옆집으로 이사 간 후론 주로 집안에서 놀았던 것같다. 큰
          던 마음.                                               길엔 차가 다니니 위험해 성당 마당에서 놀기도 하고!


          목포라는 곳이 섬에 살던 울 부모님께는 아마도 그런 곳이었                    골목 입구에 있던 이 집은 미제이모가 사시던 집이다. 커다
          으리라, 산타 마리아호의 선부들이 발을 딛었던 아메리카 대                    란 가방과 보따리에 레브론삼푸, 도브비누, 케첩, 마요네즈,
          륙처럼, 100년 전 목포로 모여들었던 많은 사람들에게도 목                   울 아부지 면도하고 바르시던 스킨 등등. 온갖 수입물건. 아
          포는 기회의 새 땅이었을 것이다.                                  니 미군부대에서 나온 미제. 그리고 일제. 이런 것들을 갖고
                                                              쌍교동 온 동네를 다니며 소식들을 전해주고받는다. 이 이모
          중학교부터 목포에서 아침 신문 200부 돌리며 학교에 다니                    가 집에 오시는 날은 신기한 물건들 구경도 재밌었지만 동네
          셨던 아버지는 우리들은 좋은 학교에 보내고 싶으셔서 대성                     집집이 얘기를 듣는 재미도 쏠쏠했다!  물론 애기들이 들으면
          동 단칸방에서 북교동 이 집의 문간방으로 이사를 하셨다.                     안 되는 얘기들이 많았지만, 난 귀가 좋았다~~~
          소위 말하는 명문. 북교국민학교 입학을 위해서, 양동 고갯길
          을 동생을 등에 업은 엄마 손을 잡고 이사하던 날도 생생히                    북교 방앗간, 화신 약국이 있는 불종대에서 올라가는 북교동.
          기억난다. 이 북교동 집에서 둘째 동생이 태어나고 애기들 많                   가는 길 내내 친구들이 사는 집들이 있고, 내가 살았던 골목
          아 시끄럽다는 주인아주머니의 잔소리로 성당 옆에 우리 집                     집집이 적어도 두 셋집은 같이 살고. 또 그 아이들 중 두셋은
          을 장만하여 이사를 할 때까지 집 앞의 골목은 나와 내 동생                   친구들이고, 우리 세 자매가 유년시절을 보냈던 북교동, 큰
          의 놀이터였다.                                            길가 성당 옆집으로 이사와 막내 남동생이 태어나면서 나의
                                                              어린 시절은 끝난 것 같다. 동생들을 보살펴야 하는 큰언니가
          그 집은 세 가구가 살았다. 문간방 우리 집 4명. 안채 주인집                 된 것이다.
          3명. 그리고 사진 속의 아줌마가 살았던 건넌방. 전남라사라
          는 양복점에 다니시는 아저씨와 애기 이렇게 3명. 여름이면
          마당 평상에 모여 앉아. 수박도 먹고 고동도 까먹던 기억, 한
          련화 잎에 동그란 수정 같은 물방울이 대굴 거리던 꽃밭이 앞
          마당에 있었고. 뒷마당엔 제법 큰 텃밭과 돼지우리가 있었다.
          돼지가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지금 생각하면 도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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