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8 - 2025년 4월전시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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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는 전시
OH yeah~!!, 90.9x72.7cm, oil on canvas, 2024 빨간공, 53x45.5cm, Oil on canvas, 2025
2025. 4. 2 – 4. 11 장은선갤러리 (T.02-730-3533, 운니동)
송기재 초대전 준다. 인물의 손에 들린 기다란 방송용 마이크는 퇴화한 감각기관 대신 기술
의 힘을 빌려 세상과 소통하는 현대인들의 기묘한 소통 방식을 이야기한다.
그림 속 분위기는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정장 차림을 한 토끼 현대인은 고개
글 : 조서연
를 푹 숙이며 길을 걷기도 하고 핸드폰을 하기도 한다. 방 안 의자에 누워 넷
플릭스를 보는가 하면 캐리어를 끌고 어디론가 가기도 한다. 하지만 낯설다.
현대인을 닮았지만 그림 밖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건 생경한 일이다. 올더
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속 최첨단 사회가 연상되기도 한다. 그 어떤 불행
사회 속 현대인은 어떤 모습일까. 고도로 발전한 현대사회 속에서 개인은 어 도 고통도 없는 사회 속에서 현대인은 모두가 똑같아지며, 외부 세계가 제공
떤 형태로 살아가고 있는 걸까. 송기재 작가는 너무도 당연한 사회라는 존재 하는 감각에 의존해 쾌락 속에서 살아간다. 사회가 정해놓은 책임과 규칙 속
속 현대인의 모습을 ‘토끼’로 상정한다. 먹이사슬의 가장 아랫단에 위치한 토 에서 진열대 위에 나란히 놓인 병처럼 전시되고 부품처럼 살다가 스러진다.
끼는 살아남기 위해 소리를 내지 않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성대가 퇴화함으
로써 오히려 생태계 속에서 생존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른바 ‘퇴행적 퇴화되어 획일화된 개인과 달리 사회는 여러 모습으로 변주한다. 토끼 현대인
진화’의 형태를 보이는 토끼의 모습은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다움 뒤편에 있는 배경은 붉은 벽돌 벽, 동물원의 울타리, 컨테이너 박스 등 때로는
을 스스로 내려놓는 현대인의 모습과 닮았다. 화려하게 때로는 담담하게 서 있다. 그 너머에 어떤 세계가 있는지 관람객은
알 수 없으며 토끼 인물조차 다른 세계에는 무심해 보인다. 벽으로 단절된 현
작품 속 인물이 뒤집어쓴 토끼탈은 완벽한 ‘구(球)’의 형태를 하고 있다. 한 재의 ‘멋진 신세계’ 안에서 묵묵히 자신들의 삶을 살아갈 뿐이다. 단 하나의 일
번 굴러가기 시작하면 외부의 도움 없이는 절대 멈출 수 없는, 완벽해 보이지 탈이 있다면 벽에 그려진 갖가지 낙서이다. 사회 속에서 자신다움을 드러낼
만 불완전한 구의 모습은 서로에게 기대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회 속 인간 수 있는 일이라곤 사회 시스템에 낙서 같은 행위를 하는 것뿐이다.
의 모습을 상징한다. 커다란 토끼탈에 비해 턱없이 작은 눈과 귀는 성대와 마
찬가지로 퇴행적 진화를 통해 생존해가는 토끼, 아니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 작가는 이 모든 현상을 그저 관찰한다. 그 자신도 현대인이지만 사회와 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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