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9 - 2020년 12월 전시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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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는 전시
순환, 석고, 튜브, 계란, 350×350×200cm, 2020
2020. 12. 11 – 12. 31 갤러리내일(T.02-391-5458, 새문안로)
벌레 그림에 나타난 존재의 부조리 빛과 시간을 조형원리로 삼는데서 비롯된 것이다. 몇 년 전부터 그는 자연광
유벅 초대전 과 인공조명을 동시에 사용하여 이미지의 변화를 유도하는 작업을 시도 해왔
다. 유벅의 작품은 주로 퍼포먼스의 형태로 이루어지며 그 프로세스를 사진이
나 비디오 영상으로 담아 전시한다. 빛과 시간을 이용한 영상 이미지 작업은
때로 긴 시간이 요구되기도 한다. 여름의 울창한 숲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가
글 : 김영호 (미술평론가)
을에 낙엽진 숲으로 변화한뒤 다시 찾아와 동일한 지점에서 촬영하여 변화 된
이미지를 담아낸 것이다. 이렇듯 유성일의 작업은 이중적 이미지를 통해 동일
한 장소의 변질과 변화를 주목하는것이다. 자연을 변화시키는 시간의 유한성
에 대한 관심은 결국 사멸하는 존재에 대한 성찰을 불러 일으키게 되었는데
예술표현 의 미디어로 사용된 벌레들 이 대목에서 등장한것이 바로 벌레 그림이다.
유벅의 작업은 벌레의 죽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떤의미에서 그는 벌레 사냥
꾼이다. 유쾌하지 않은 수확물은 엄밀히 말해 이미지 생산을 위한 미디어로 인간과 세계의 불합리한 관계를 드러내다
작품에 쓰여진다. 사진이나 벽면등에 유인액을 바르고 야간에 빛을 비추거나, 유벅의 작업은 생명의 사멸을 담보로 진행된다. 작가가 쳐 놓은 죽음의 덫에
라이트 박스에 불을 켜면 주변의 날벌레들이 모여들어 부착되면서 이미지를 걸려들어 쌓인 벌레의 사체가 그의 작업을 완성하는 온전한 미디어다. 벌레
만들어 내는 것이다. 빛을 덫으로 이용하고 시간의 흐름속에서 이미지를 만들 의 .군집은 두꺼비나 낙엽등의 이미지를 이루거나 이정표나 표지판을 이루기
어내는 유 성일의 작품은 생명윤리와 기호화된 죽음 등의 문제의식을 파생시 도 한다. 때로는 인쇄된 사진 이미지 표면에 부착된 벌레들은 인쇄물의 망점
킨다. 이 미물들은 오묘한 순환의 서클을 지닌 대 자연 속에서 생명현상의 근 이나 컴퓨터의 비트처럼 보이기도 한다.이렇듯 유벅의 작업은 미디어 매체로
간을 이루는 존재들이다. 따라서 유성일의 벌레 그림은 짐승의 사체를 이용 전환된 벌레미학을 보여준다. 십자가형을 둘러싼 폭력과 잔혹성이 인간의 윤
한 데미안 허스트의 경우와도 다른 미학적 논쟁의 가능성을 제공 하고 있다. 리의식을 지배하는 신학적 틀의 원리가 된것처럼 미물들에게 가해진 죽음도
예술의 불가사의한 힘에 새로운 의미로 탄생되길 작가는 바라는 것일까, 유
빛과 시간을 이용한 이중적 이미지들 벅의 부조리한 죽음의 작업은 우리들에게 실존적 사색의 길로 안내하고 있다
유벅작가가 벌레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우연한것이 아니다. 그 과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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