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7 - 샘가2025. 9-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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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 예수님은 집으로 되돌아온 동생을 보고 불평하는 형의 태도를 비유하여
바리새인들의 위선과 잘못된 태도를 정면으로 지적하십니다.
잔치를 베푼 아버지(25-27) 집으로 되돌아온 둘째 아들은 탕자가 아니라 죽었다가
다시 살아온 아들,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가락지까지 끼워주며 품꾼이 아닌 아들로 인정하고 풍악과 춤이 어우
러진 기쁨의 잔치를 베풀게 됩니다. 둘째 아들은 탕자의 삶을 살다가 품꾼으로 집에
되돌아왔지만 아버지는 한순간도 아들의 신분을 탕자나 품꾼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도 죄인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시는 하나님 아버지
의 마음입니다.
맏아들의 반응(28-30) 둘째 아들이 되돌아온 상황에서 아버지는 잔치를 베풀며 기
뻐하였는데 맏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노하여 집안으로 들
어가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에게는 친구들과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지금까지 염소새끼 한 마리라도 해준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의
무지와 교만이며, 동생으로 인하여 자신의 재산에 이상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이기
적인 욕심이 내포된 마음입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재산은 이미 맏아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욕심을 드러내고 아버지의 불공평함을 원망하는
형의 모습을 바리새인들의 태도로 비유하신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당시 바리새인
들의 자기 교만과 스스로 의롭다 하는 태도와 허식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아버지의 권유(31-32) 맏아들은 동생을 가리켜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
켜 버린 이 아들이라고 했습니다(30). 이는 자신이 이 아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
로 성실하고 우월한 존재라는 것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정상적인 형이라면 돌아온
동생을 누구보다 따뜻하게 맞이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그의 잘못된 자세
는 동생을 한 피를 나눈 형제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아
버지는 내 것이 다 네 것이라는 말로 상속에는 문제가 없으나, 이 아들이라고 표현
한 것을 네 동생이라고 바로잡으며 맏아들의 그릇된 사고를 깨우쳐줍니다. 왜냐하
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잘못된 가치기준과 동족에 대한 우월감으로 세리와 같은
당시의 소외 계층들도 동일한 하나님의 자녀요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인정
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맏아들은 집으로 돌아온 동생을 위해 아버지가 잔치를
베푼 것을 보고 원망과 불평을 했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작은 연필 한 자루가 새 학기를 맞아 필통에 들어왔습니다. 반짝이는 새 연필들은 그를 보며 속삭였습니
다. “어디 다 닳고, 지워진 자국 투성이야.” 하지만 아이는 매 수업마다 익숙한 그 연필을 먼저 꺼냈습니
다. 그 연필은 말없이 줄을 긋고, 그림을 그리고, 마음을 적었습니다. 가장 많이 쓰인 도구는 결국 가장
사랑받은 도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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