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 - 김희재 초대전 2023. 8. 16 – 9. 15 일조원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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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天) · 지(地) · 인(人) 합일(合一)의 예술혼



            김혜니, 문학 평론가





            ◎ 김희재 미술 세계의 시놉시스                                                            내구성으로 인해 응집, 불멸, 영원, 안정 등을 상징한다. 산은 하늘과 땅이 만나는 중간 지점이라는 점에서
                                                                                         세계의 축이자 생명의 나무, 하늘에 오르는 사닥다리, 대우주의 척추로 상징되곤 한다. 또한 연금술의 경
            붓칼 화법과 심연의 비밀 서랍                                                             우, 이른바 ‘철학자의 돌’은 서로 대립되는 세계의 결합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바위’는 방황과 안정, 육체와
              김 화백은 60년을 화폭과 씨름하면서, 온 마음과 몸을 던져 부닥뜨리며 거듭 화단의 큰 사람으로서의 경                  정신, 의식적 자아와 무의식적 자아를 하나로 통합하는 자연이다. 이렇듯 그녀의 정신과 육체에 암벽산이
            지를 높여 왔다. 또한 그녀는 21세기 화단에 ‘붓칼 화법’을 창시하여, 이 ‘붓칼 화법’은 오늘날 미술계에서,               자리함으로써 모든 것을 함께 아우르게 된다. 따라서 이는 생의 모순과 운명성, 즉 인간의 한계성을 우주
            그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그녀만의 고유한 특성으로 평가받고 있다. 나아가 그녀의 모든 작품 속에는 음                    적 상상력으로 치환 상승시킴으로써 초극하고자 하는 표출이기도 하다.
            악이 흐르고, 시가 속삭이고, 그 중심에 철학이 자리하고 있다. 원래 김 화백의 집안은 예술성이 뛰어났다.                   화폭 속의 연못은 넋을 잃고 자기 모습을 바라보다가 빠져 죽은 신화 속의 미소년 나르시스의 그것이 아
            오늘날 화단에서 김희재만큼 문학이론을 비롯하여 예술론, 철학론에 해박한 화가는 없을 것이다.                          니다. 그냥 그녀 심연에 꽁꽁 감추어둔 무의식의 거울이며 자화상이다. 그녀는 고독한 몽상 속에서 연못을
              일찍이 그녀는 국내외에서 ‘산,’ ‘바위,’ ‘시든 꽃,’ ‘야생화,’ ‘엉겅퀴’ 등에 주목하여 미술 세계를 펼쳤다. 그        응시하면서 꿈꾸며 침잠한다. 그녀의 연못은 한 점 미동도 없다. 존재의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일종의 자
            런데 이러한 자연환경은 사실적이고 순수한 자연의 정경이 아니라, 그녀의 정서적 심연 깊숙이 상상 속에                     기 망각 후에, 그녀의 넋은 다시 표면으로 떠오른다. 연못은 공간의 세계에서 무공간의 세계로, 시간적인
            자리한 기억을 화폭에 담은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그림에는 공간적 거리나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의 구체                     존재에서 무시간적인 존재로 넘어가는 입구라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이니시에이션(initiation, 통과의
            적인 형태가 해체되어 있기도 하여, 마치 인상주의적인 작풍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따라서 그                    례)이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바로 적막하고 꼬불꼬불한 산모롱이 길이다. 이 길은 그녀가 지상에서 천상
            녀의 작품을 잘 이해하려면, 우선 그녀의 심연 밑바닥에 켜켜이 쌓아놓은 사색과 침묵의 비밀 서랍을 꼭                     으로, 그리고 세속에서 신성으로 가는 길이다. 길이 다한 곳의 산속은 고요하다. 그녀의 침묵은 길밖에 또
            열어봐야 할 것이다.                                                                  길이 있음을 암시한다. 침묵은 바람이 되어 산속에서 자란다. 그녀는 사닥다리가 되어준 암벽을 타고 구름
                                                                                         위에 오른다. 그 구름 위 천국에서 그는 천혜의 숨을 내뿜는다.
            소멸과 생성의 변증법적 미학
              미술과 철학이 결코 같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분리하여 생각할 수는 없다. 특히 김희재의 미술                  검은색의 비밀
            세계는 그 속에 응축되어 있는 철학을 반드시 찾아내야만 한다. 지난번 비밀 서랍에서는 김희재 그림의 테                      색깔이 마음에 작용한다고 했을 때, 마음은 곧 정신을 뜻한다. 또한 정신의 응축된 표현을 그림이라고 한
            마 중 하나로 소멸과 생성, 하강과 상승의 변증법적 그림 편력의 구도화를 찾아냈다. 그녀의 화폭을 가득                    다면, 그림에서 색채는 직접적으로 작가의 마음을 반영한다. 그녀의 초중반 작품에서 특히 주목을 끄는 색
            채운 엉겅퀴들은 바람에 흩날리면서 시적 언어를 속삭인다. “흩음으로 열매를 맺게 하고, 비움으로 채우게                    깔은 ‘검은색’의 바탕이다. 그녀는 여름의 풍성한 엉컹퀴와 야생화를 화폭에 담으면서도 검은색을 바탕으
            하는” ~~곧, ‘꽃잎-열매,’ ‘소멸-생성’이라는 역설적 원리를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무수한 회의와                로 처리하고 있다. 그러면 그 검은색의 비밀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검은색은 허무, 절망, 정지, 침묵, 부
            좌절, 부정과 절망 끝에 비로소 도달하게 되는 삶의 변증법적 과정이기도 하다. 동시에 부활을 통한 거듭                    정, 죽음, 죄, 불안 등을 상징한다. 그 검은색은 대상을 표상하는 이미지라고 판독할 수 있다. 엉겅퀴와 야
            남의 자아실현이기도 하며, 이는 자아와 세계의 탄생을 의미하기도 한다.                                      생화가 바람에 흩날려 흩어지는 근원적 상징에 어둠이 기능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즉 어둠은 지상
                                                                                         적인 모든 대상들을 덮어서 완전하게 지워버리는 지우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렇듯 그녀가 추구하는
            산과 바위, 연못과 산모롱이 길                                                            정신적 예술세계는 속세의 모든 것을 완전하고 정갈하게 지워버리고 새롭게 부활한다. 곧 부재와 부재의
              김희재의 그림 테마 가운데 ‘산’은 그 높이에 의해 세속과 동떨어진 신성한 곳이며, ‘바위’는 그 견고성과                대결을 통하여 존재로, 부정과 부정의 대결을 통하여 긍정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완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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