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 - 손홍숙 작가 화집 1983-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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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홍숙의 화업




                                                                                         박 기 웅 (미술학박사, 전 홍익대교수)






             작가 손홍숙은 1980년대 초반부터 일상생활에서 감동받은 대자연의 숨결에 매료되어 꽃과 과일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 나무들을 그리기 시작한다. 당
           시부터 작가는 소나무, 전나무, 자작나무 등을 소재로 하여 평범한 풍경화라기 보다는 숲에 가까운 작품들을 주로 그렸으며 싱그러운 자연과 대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긍정적이고 찬란한 힘에 의지하여 매우 신선하고도 맑은 화풍을 선보여 왔다. 이러한 작품들은 현재에 이르러 <자작나무>, <연꽃>, <수
           련> 그리고 <결실(추수)>시리즈 등으로 지속되고 있다.
             작가의 회화에 대한 연구 범위는 날로 넓어져서 수묵에서 채색으로, 다시 서양화에서 사용하는 오일 및 아크릴 페인팅에 이어 최근 들어서는 좀 더 새
           로운 혼합기법에 도전하고 있다. 사용하는 주제도 변천을 거듭하여 풍경화로서의 한국의 모습이 진화하여 가장 최근에는 우리들의 삶과 자연 사이의 인
           과관계를 조망하게 된다. 이것은 금속판재와 특수한 물질, 그리고 그라인딩 기법들을 접목하여 새로운 회화 시리즈인 <자연과 나> 시리즈에 도달하였
           기 때문이다. 몇 가지 선택된 작품들을 설명하면서 이와 같은 작가의 화업 흐름을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 동양화 >
             1983년부터 1991년까지는 동양화 시대라 할 수 있는데 이 당시에는 십장생을 주된 소재로 하여 소나무, 제비, 연꽃, 원앙, 학, 사군자, 바위 ... 등을 정밀
           채색하는 방식으로 연구하였다. 예를 들어 작품 <제비>의 경우 명료한 나뭇가지와 필력을 바탕으로 하는 수묵화법을 도입하여 경쾌한 담채화를 그리
           고 있는데 이것은 두터운 붓과 세필이 사용된 간결하면서도 정제된 그림이라 하겠다. 작품 <원앙>의 경우 연잎이 드리워 놓은 그늘에서 원앙이 편히 쉬
           고 있어 매우 평화롭고 자연스러운 그림이다. 이 그림에서 연잎은 거친 붓질을 위주로 하고 두터운 붓으로 거칠게 그려져 있는데 중간 중간에 구멍이 뚫
           려 있고 잎사귀의 가장자리도 찢겨져 있어 자손들의 고된 풍파를 막아주는 우리들의 부모님과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반면 상대적으로 원앙은 한가
           롭고 편안하게 그리고 천진난만하게 둥그런 몸짓을 하고 있어서 매우 안전해 보이며 평화를 만끽하고 있는 모습이다. <孔雀 공작>의 경우 정물화와 실
           경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서 가장자리의 수풀은 단아한 정물화처럼 보이는데 허공을 바라보는 공작은 관조적이며 우아하다. <학> 그림은 아홉 마리의
           학들이 다양한 동작을 펼치고 있으며 우아하게 날개를 펼치거나 휴식을 취하는 여유를 선보이고 있다. <花香鳥語 화향조어>의 경우 새는 시를 읊고 꽃
           은 향기를 뿜고 있다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한 마리의 참새이지만 즐겁게 꽃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爲誰辛苦爲誰忙 위수신
           고위수망>의 경우 벌이 꿀을 채취하느라 삶이 고되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이와 같은 사례들로 볼 때 작가는 도가적이며 관조적인 여유를 뿜어내는 재치 있는 낭만적 풍류를 느낄 수 있는 화풍을 구가하고 있다. 필리핀 수도 마
           닐라에 체류하던 시절에는 중국인 마스터 첸(Chen)으로부터 정밀화풍 중국화를 사사 받았다. 마스터 하우(Hau)로부터는 자유풍(free style) 회화를 전
           수받고 연구하기 시작하여 동·서양 회화의 장단점을 익히며 여러 유형의 조형 실험을 단행한다.


             작가는 사군자를 기초로 단순히 한지에서 발전하여 색깔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여러 유형의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는 실험을 진행하였다. 그 결과
           작품에는 구상성과 추상성이 혼재하는 미묘한 화풍이 형성되는데 수묵화처럼 먹물을 그대로 사용하기도 하며 이를 진전시켜서 자유스런 필치가 생생
           하게 드러나는 자유풍의 회화가 형성된다. 이 화풍은 의도적으로 종이를 구기고 이를 다시 펼친 다음 주름이 형성된 바탕 위에 붓으로 그리는 실험을 하
           였는데 이는 동양의 서체 추상의 기법과 서양의 해체주의 기법이 서로 화해를 이루는 공간이 된다. 작가는 비단 위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였는데 섬세한
           천 위에 먹 그리고 색의 필치가 접목을 이루는 화폭을 연출하기에 이른다.

             이 후 작가는 본격적으로 동·서양 회화의 다양한 방식을 막론하는 여러 유형의 시도를 하게 된다. 2008년부터 현재까지 캔버스 위에 유채화(oil
           paintings) 작업에서 시작하여 혼합재료를 동시에 사용하는 단계로 돌입한다. 이 당시의 몇 가지 작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유채화 >
             작품 <생명>의 경우 (2014년 대한민국 회화대전 최우수상 수상작품으로) 싱그러운 초록색 화면에 대여섯 그루의 아름드리 나무가 풍성한 자연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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