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1 - 전시가이드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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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울림, 72.7x60.6cm, Oil on canvas, 2021
없는 것이 자연의 매력이다. 그것은 영원히 포착되기를 거부하고 지속해서 순간순간 변화를 거듭하는 자연의 현상에 매번 새롭게 이루어지는 감각의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시간과 공간 속에서 단 한 순간도 잠들지 사건을 그림으로 구현하고자 하는 시도라고 보인다.
못한다. 이때 그림은 감각을 끌어모으는 과정을 통해서 그 자연에 도달하려
한다. 그러니 자기 몸의 지각이 소환해낸 산에 대한 총체적인 반응의 결과를 신현국의 산 그림은 최소한의 구상화풍을 견지하면서 속도감 있는 붓질,
가시적 형태로, 질료적 흔적으로 고형화하고자 한 것이 그의 그림인 셈이다. 물감의 두드러진 질료성의 강조, 주관적인 색채감각이 형태를 초과하는
그것은 이미지이자 질료이며 보이는 것인 동시에 비가시적인 것들로 혼재되어 그림이다. 평면성을 유지하면서 촉각적인 마티에르를 강조하고 있고 추상에
있다. 이처럼 그에게 계룡산은 특정 대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변화무상한 가까운 대상의 간추린 요체화, 화려하고 뜨거운 색채와 두드러진 필획의
자연의 총체적인 모습이자 자신의 신체와 지각에 매 순간 감응을 일으키는 강조는 무엇보다도 자연에서 받은 감흥, 특히 자연의 기운, 이른바 자연의
외적인 존재로서 그림을 그리도록 유발하는 동인이자 매개로 자리하고 있다. 영기에 주목하고 이를 가시화하고자 하는 의도에 우선하는 방법론으로
아니 그는 스스로 그러한 계기를 만들기 위해 그곳으로 찾아간 셈이다. 그가 보인다. 결과적으로 작가는 자신의 그림은 자연의 진실된 모습, 이른바 자연의
계룡산 자락에 터를 잡고 그곳에서 매일 같이 마주하며 지각하는 대상인 저 리얼리티이자 자연의 영혼을 시각화하려는 것이라는 사실을 표명하고 있다고
산을 그는 수십 년간 지속해서 그리고 있다. 그 무수한 반복적인 재현은 동시에 본다. 그것은 단지 눈에 보이는 산이 아니라 총체적인 감각기관을 자극하며
결코 재현되거나 동질화될 수 없이 지연되고 변형되거나 미끄러지면서 여전히 가슴으로 밀고 들어오는 산이다. 신현국의 산들은 대개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와 한 쌍으로 그는 화병에 꽂힌 꽃만을 있는 커다란 산이고 따라서 거대하고 웅장하며 숭고하기까지 하다. 수평으로
단독으로 설정해서 그리고 있다. 특정 꽃의 사실적 묘사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자리하고 있거나 눈앞에 일어나 직립한 산들이다. 따라서 보는 이의 눈에 산
그 꽃으로부터 지각된 자신의 감응의 결과를 표현하려는 시도가 우선하고 있는 그 자체의 물질감, 무게감을 우선적으로 안긴다. 세부의 묘사는 지워지고
그림이라고 생각되는데 따라서 이는 산 그림과 동일한 맥락에서 출현하고 간략하게 처리한 대상의 윤곽을 이루는 몇 개의 굵은 선들, 중후한 덩어리의
있고 이 역시 반복적으로 그리고 있다. 무수한 반복을 통한 차이의 발생을 통해 맛과 색채의 질펀한 피부막이 표면을 덮고 있다. 죽죽 거침없이 뻗어 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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