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 - 전시가이드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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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가이드 초대석
산의울림, 116.7x91.0cm, Acrylic on canvas, 2017
강렬한 선과 두터운 마티에르, 대담하게 세부를 생략해 버리는 과감한 묘사, 내재한 적극적인 힘을 지닌 존재가 되어 달라붙어 있다는 인상을 준다.
화려한 색채의 더미를 이루는 촉각적인 표면이 돋보인다. 외형적인 산의 재료 자체가 그림이 되고 물질이 어떻게 작가에 의해서 가공, 연출되느냐에
일반적인 묘사/재현 혹은 풍경화의 상투적 관례로부터 벗어나 있는 이 그림은 따라 화면이 결정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 그림은 재료가 변해가는
산/자연의 이미지가 아니라 그 안쪽으로 들어가 외관 아래 잠긴, 내재해 있는 과정 그 자체에 핵심적인 의미가 있다. 화면은 물감 자체의 흐름과 질감의
어떤 것을 끌어내려는 제스처 같다. 이른바 동양화에서 흔히 말하는 ‘기’라든가 풍성함, 변화가 만드는 희한한 표정으로 가득하고 그것이 캔버스 피부 위에서
생명력 등일 수도 있고 대기, 시간의 변화 속에서 다가오는 산과 그것을 만들어내는 특유의 표면 효과만으로도 모종의 회화성을 충족시키고 있다.
지켜보는 자신의 마음의 변화가 맞물려 파생되어 이룬 산의 이미지일 수도
있다. 반면 자연에 대한 감정이 너무 앞서거나 자연의 변화양상에 과도하게 동시에 이 물질은 화려하고 환상적인 색채를 거느리면 출현한다. 색의 의미는
반응하는 것이 표현기법의 과잉을 초래할 수 있다는 아쉬움도 있다. 사람들 속에 내재하고 축적된 어떤 경험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색이란 것 역시
자신의 신체, 감각기관이 자연/외부와 만나 이룬 결과물이기도 하다. 신현국은
그이의 그림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거칠면서도 두툼한 표면의 질감이다. 계룡산의 사계에서 접한 모든 것을 색으로 치환하고자 한다. 여기서 붓질과
물감을 반죽하듯이 활용하고 이를 성형해내고 있다. 물질이 지닌 성질을 색채는 외부 세계의 재현에 종속되기보다는 자기 신체와 감정의 등가물로
극대화하면서 이를 그림 그 자체로 내밀고 있는 것이다. 물감의 살과 무게, 위치한다. 자연에서 받은 감동과 떨림이 그대로 색/물감과 붓질로 구성된다.
질량은 표면을 장악하면서 산의 존재감을 생생하게 촉각화, 물질화하거나 자연의 무수한 변화양상을, 기후의 변화를 질감과 색채로 가시화하는 것이다.
자연의 변화 양태를 실감 나게 눈앞에 펼쳐내는 역할을 한다. 그로 인해 결과적으로 신현국의 그림은 물감/색을 통한 질료적 표정을 성형한 것이다.
사계절의 여러 기후변화와 그로 인한 감정의 양상이 ‘드라마틱’하게 전개되는 색을 지닌 물감의 질료적 성질을 활용해 이룬 촉각적이고 부조적인 화면이자
편이다. 작가는 물감과 함께 이질적인 재료의 혼합을 통해 특이한 살, 몸을 구상적인 동시에 다분히 추상적이기도 한 화면이다. 그림을 이루는 재료
만들고 두꺼운 반죽이 된 화면을 촉각적으로 만들고 있다. 그것은 그려진 자체가 스스로 그림을 만들고 있기에 그렇다. 산이나 꽃이 연상되는 최소의
그림이자 만들어진 화면이고 일종의 부조적인 표면이다. 물질들 스스로가 형상이 질료의 더미 사이에서 몸을 내밀지만 동시에 그것들은 물감과 색채
말하는, 물질의 음성으로 이루어진 그림이다. 그러니 이 물질은 그 자체가 속으로 구분 없이 스며들고 사라지기를 또한 거듭한다.
형태를 산출할 가능성을 지닌, 잠재적 에너지를 응축하고 있는, 생명력을 그는 오랜 시간 자연에서 접한 무수한 이미지들, 그 형태와 질감, 색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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