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 - 전시가이드 2025년 08월 이북
        P. 20
     이달의 작가
          빛과함께, 116.8×80.3cm, mixed media, 2024
        로로 집을 상정하고 “덧칠하고 긁고 새기는행위들을 통하여 시간을 각인          가 풀 수 없는 수수께끼로 가득한 하나의 거대한 추상적 개념체임을 암시
        시키고 되새김질을 한다.”이러한 류제봉의 작업은 시간을 멈춰 세우는 힘         하는 범신론적 진실에까지 접근하고자 하는작가적 사유가 담겨있다. 이
        이 있다. 실제와 똑같은형상이 필요하다면 사실성을 극대화할 수도 있겠          처럼 류제봉의 예술적 행보는 시작도 끝도 없이되풀이될 뿐인 순환운동
        지만, 재현 예술의 가치는 예민한 작업과 수일을 소요하는 ‘시간’에 있다.       의 한 지점에 지나지 않음을 암시한다. 윤회는 통합적이고, 우연적이고,
        존재에 대한 그리움, 상실감, 과거를 현존의 영역으로 다시 끌어들이는애         그리고 무엇보다도 생성적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예술적 접근방식은 작
        틋함 등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지난한 작업 과정이 시간을 품은 재현과 예         가가 새기거나 긋기, 또는 바르는 것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모더니즘 추상
        술의 차이를 만든다. 이는 류제봉의 예술이 이미 동일성의 범주에서 벗어         과 일정부분 연동된다. 이 추상으로의 반전은 류제봉의 회화가 구분상 구
        나 ‘차이의 생산 가능성’으로 접근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예일 것이다. 그        상회화에 가깝다는 점에서 이율배반적이다. 작가가 기본적으로 ‘마을 혹
        것은 집이라는 실재와 예술 사이의 간극에 있는 시공간적 질서와 무질서,         은 집’이라는 대상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작가가 신
        혹은 상념과 사유로 응축된 진실들일 것이다. 그리고 그 진실은 보이는          뢰할만한 표현적 역량을 지니고 있고 이를 성공적으로 구현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가늠할 수 없는 형태로 존재하며 보편인식을초월한 다양한           점에서도 아이러니다. 그녀가 대상을 관찰하면서 추상의도 가득한 기법
        가치들을 생성시킨다. 이는 모더니즘 추상이 추구했던본질의 탐색과는            들로 전체와 부분을 포착한 화면은 파스텔톤이 만연함에도 생의 요소로
        또 다른 차원의 접근법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녀가 집혹은 건축물을 표현         가득 차 있다. 대상을 염두에 두면서도 그 형상들은 하나의응축된 생명
        하려고 하는 것을 넘어 그 이면에 드러나는 진실을보고자 하는 욕구를 드         의 이미지로 추상적으로 물질화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형상성에 머물면
        러내게 된다. 그것은 매력적인 그의 예술에서 보이는 그리움에 대한 가치         서도 형상보다는 이의 의미에 천착하는 역설적 표현방식은 류제봉 회화
        와 시간을 품은 대상들이 내뿜는 정감어린 가치들, 그리고 무엇보다 작가         의 형식적 특징이다. 자연에서 기인하지만 추상성을 띠거나 대상의심층
        가 연민하는 슬픈 영혼들에 대한 기억일 것이다. 빛과함께 40.9x32.0cm     을 관통함으로써 노동과 시간의 진실을 환기하고 있는 것이다. 순환적 시
        mixed media 2023의 잉태와 소멸, 반복되어 사라지지만 영원한 사유     간의 이미지한편 류제봉은 자신의 풍경화를 “단순한 집의 형태라기보다
        의 에너지, 또다시 피어오르는 자연의 미학을 노래하는 것”이라고 말한          는 생명과 자연류제봉의  연작은 유동하는 빛과 서로 조우하는 집들, 대
        바 있다. 이는 결국 영겁회귀(永劫回歸)와 같은 개념이며 역사의 기원이         상과 여백이 분리되지 않은 일체감, 기교를 멀리하고자 하는 태도, 유동
        반복해서 되돌아온다는 순환적시간관을 가리키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하는 빛과 절제된 색조로 주제를 부각시키는 방식 등 현대회화의 특성을
        이는 니체에 의해 근대인들의 단선적, 진보적 시간관을 비판하고 허무주          잘 보여주고 있다. 무엇을 그리려고 했다기보다는 도구의 간섭과 회화적
        의를 정초하는 이론적 근거로 사용된 개념이다. 이는 광의의 진보주의이          기교를 가능한 배제하고 재료 스스로 추동하여 활력을 보이도록 배려한
        자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생성의 논리이다. 여기에는 재현을 넘어선 실         작가의 태도에서 우리는 모더니즘 시대 전능한 작가의 모습보다는 현상
        존, 그리고 영겁회귀와 환생의 순환적 구조와 함께, 무엇보다도 삶 자체         에 순응하는 동시대 장인의 모습을 본다. 류제봉은 규정된 관념보다는 회
        18
        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