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7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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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비(後妃) 왕씨(王氏)는 고려 태조의 전비(前妃) 소출(所出)이니 5남을 낳으셨다.
은열(殷說)은 경주김씨(慶州金氏)가 되고, 석(錫)은 의성군(義城君)이고, 건(鍵)은 강
릉군(江陵君)이고 선(鐥)은 언양군(彦陽君)이고 추(錘)는 삼척군(三陟君)이다.
4) 三朝受敎
兵曹爲相考傳準事 敬順王行狀 取納禮曹回啓
相考焉乎矣 乙未年四月 日節 啓下敎是 幼學 金鳴遠•金百鍊等 皆以敬順王後裔 流落
鄕曲 悶迫私情 仰籲於
聖明之下 伏願 特垂矜察焉 大槩 臣矣等先祖敬順王 愛民治國之政 實是三韓之明王也
殘滅胡孼 掃淸羣凶 於是 民權所歸 上下神祗咸有依托 大豪小猾 望風瓦解 盖自東方
立國以來 無比敬順王之德 故自三朝以後 敬順王後裔 勿定軍保 己過麗祖 逮于我朝
太宗大王傳敎 内有曰 世恤其後 錄用子孫 而雖枝庶 勿定軍保 沙汰考講時 勿入講例
事 丁寧申飭爲白乎旀
宣祖大王 亦以此意 再三傳敎 敬順王後裔 撫恤之典 不啻尋常萬 而孝宗大王朝 亦以
敬順王子孫 錄恤之敎 載在國典 昭然可考爲白乎 等以頃年考講時 勿入講例事 亦有受
敎 奉承傳施行爲白乎矣 臣矣等 汨沒窮鄕 未夢先祖之令德 列聖之遺敎是如 抱寃呈訴
爲有置 一依受敎 依願 勿侵軍保 勿入講例事 移文諸道各邑 有如金石之典何如
順治十一年四月初九日右副承旨南翧 次知 啓依允敎是事是乎等以 敎旨內辭意 奉審
施行事
<삼조수교 해석(三朝受敎 解釋)>
병조(兵曹)에서 상고(相考)하여 기준(基準)으로 전(傳)한 일.
경순왕(敬順王)의 행장(行狀)을 예조(禮曹)에서 받아들여 회계(回啓)함.
상고(相考)하오니 을미년 4월 일 즈음에 계하(啓下)하신 것임.
유학(幼學) 김명원(金鳴遠)·김백련(金百練) 등은 모두 경순왕(敬順王)의 후예(後裔)로
향곡(鄕曲)에 유락(流落)하여 사정(私情)이 민박(悶迫)하오니 성명(聖明) 아래 호소(呼
訴)하는 바입니다. 엎드려 원하옵건대 특별히 긍찰(矜察) 하심을 내려 주시옵소서.
대개 신(臣)들의 선조(先祖) 경순왕(敬順王)은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다스린 정치
(政治)가 실로 삼한(三韓)의 명왕(明王)이니, 호얼(胡孼)을 잔멸(殘滅)하고 군흉(群
凶)을 소청(掃淸)하였는데 이렇게 해서 민권(民權)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상하(上下)
를 신령(神靈)이 도와서 모두 의탁(依託)할 곳이 있었고 대호소활(大豪小猾)은 망풍
제3편 고증기(考證記) 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