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9 - 의미衣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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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체성 : 부름 ]
‘이 옷이 그것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생각하는 최상의 가치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매개체라고 생각합니다.’
본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옷이 있나요? 옷이 본인의 삶(생활/직업 등)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요?
보통 저는 검은색을 좋아합니다. 종교 신부 복장이
라고 한다면 수단이라는 긴 검은색 치마를 입죠. 저는 너무 분명하죠. 외적인 복장으로 사람들이 저
예식이라는 미사를 할 때는 수단과 제의라고 원형 의 정체성을 한눈에 알 수 있으니까요. 제가 수업
천에 얼굴에만 들어가는 옷을 입어요. 수단과 제의 시간에 강조하는 것이 내가 성직자라는 것을 알리
라는 옷이 저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 더 중요하죠. 는 것보다 이 복장으로 신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가
제가 인터뷰하면서 꼭 이 이야기를 하려고 했어요. 치를 내 삶으로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
여러분 돌아가시면 냉동실 들어가잖아요. 저는 지 거든요.
금 서울 소속 신부로서 죽으면 장례식장 냉동실로
안 들어가고 명동성당으로 가요. 명동성당 지하에 이 옷이 그것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작은 성당이 있는데 서양식으로 진공 유리관에 제 게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선 긋는 것이 아닌 내가
시신이 들어가고 그때 입는 옷이 수단이에요. 제가 생각하는 최상의 가치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신부가 되기 위해서 입은 흰색 제의가 무덤에 들어 수 있는 매개체라고 생각합니다.
갈 때 입는 옷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수단과 제의
‘나’에게 옷이란?
는 저에게 큰 의미죠. 신부가 되기 위해 입은 옷이
죽을 때 입는 옷이 되는 거니까. 제의와 수단을 입 나의 정체성 그 자체에요. 나의 옷으로 하여금 나의
을 때 내가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지 나 자신을 성찰 정체성을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보여주니까 나를 지
할 수 있게 하는 저의 중요한 수단이 되는 거죠. 탱하게 하는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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