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6 - 메타코칭 문해력 독해력 어드밴스 20호
P. 36
메타리딩 문해력•독해력 어드밴스 20호
속해 - 바른 자세로 몰입하여 읽는다
- 중심 단어 5개로 문장을 만들어 연결하여 줄거리를 만든다.
첫 서양식 병원 제중원
1882년 일본을 둘러본 뒤 부강한 국민국가를 세우고 싶어 했던 김옥균은 콜레라가
창궐해 수십만 명이 죽어 나가던 그 무렵. 그는 도로에 넘쳐흐르는 분뇨를 논밭에 비료로
쓰면 전염병을 막고 농업생산성도 올릴 수 있으며, 아울러 물자의 유통도 원활하게 하는
일거삼득의 이가 있다고 보았다. 부국강병의 토대인 국민의 건강을 지켜 인구를 불릴 위생의
책임이 국가에 있음을 깨달은 그는 이를 담당할 ‘위생경찰’ 제도와 서양의학을 들여오고
싶어 했다.
갑신정변 때 자객의 칼에 치명상을 입은 민영익을 알렌이 살려냈다.
“폭동이 있은 지 얼마 후 국왕과 면담하는 중에 서양의 병원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고
수술에 대한 설명과 그 이점이 왕의 흥미를 끌어 알렌에게 서울에 병원을 세웠으면
좋겠다고 암시했다.”
육영공원 교사 길모어의 증언처럼 정변 실패는 부국강병을 바란 김옥균의 꿈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렸지만, 이듬해인 1885년 최초의 근대적 병원 제중원(濟衆院)이 이
땅에 들어서는 계기로 작용하는 역설을 낳았다.
그러나 그때 왕실이 근대적 의미의 위생 사업에 발 벗고 나선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때 제중원의 개원은 백성들에 대한 왕실의 시혜를 보여주는 혜민서와 활인서(조선 시대에,
서울에서 의료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아.)의 기능에 신묘한 서양의술을 더한 전통적
휼민책(恤民策, 빈민이나 이재민을 구제하는 정책.)의 연장에 지나지 않았다.
(528자)
페이지 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