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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양화진 (楊花津, 버들꽃나루) 은 노량진, 동작      전염병에 걸린 환자들을 돌보던 중, 자신도
                    진, 한강진, 송파진과 함께 서울의 오진 (五津)        이질에 걸려 1890년 7월 26일 34세의 일기
                    이었다 특히 양화진은 조선정부에게 있어서             로 삶을 마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때 많
                    교통과 국방의 요충지였다. 양화진 앞 강물            은 선교사들이 고종 임금에게 묘지를 요청하
                    이 깊어 큰 배도 드나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였고, 고종이 허락하여 양화진에 서울 외국
                    근처에는 누에의 머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잠            인 공원묘지가 위치하게 된 것이다.
                    두봉 (蠶頭峰) 으로 불리는 봉우리도 위치하고          이곳에 묻혀 있는 많은 선교사들은 우리나라
                    있다. 천주교에서는 이곳 잠두봉에서 많은             가 일제치하에서 고통당하고 있을 때 우리
                    신자들이 머리를 잘려 죽었다고 해서 절두             민족을 위해 헌신했던 분들이다. 우리는 이
                    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양화진에 ‘서울외            곳에서 순교신앙을 배워야 한다. 이곳에는
                    국인묘지공원’이 위치하게 된 이유는 알렌에            약 500여 명의 묘가 위치하고 있다. 이중에
                    이어 제중원의 원장이 된 헤론 (J. W. Heron) 이   서 선교사의 묘는 145기다.

























                          제물포에 상륙하신 아펜젤러의 첫 기도
















                    소다 가이치                               홀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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