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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은 지금의 교육대학 동쪽에서 지금의 신동아 아파트 옆 무지개쇼핑
센터까지 동서로 긴 마을로 가구수 40여 호의 서초동에서 가장 큰 마을이었다.
마을 입구 역할을 했던 마을 남쪽 고개인 도당재 인근 당산에는 수령 500년이 넘
는 아름드리 낙락장송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해마다 서초동 각 마을 대표들이
모여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를 지냈으며, 분토골, 샘말과 경계를 이루던 마
을 남동쪽 산 정상에는 마치 속리산 정이품송과 꼭 닮은, 대감나무라 불리던 월
등히 큰 노송이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하였다.
그런데 산업화의 상징인 경부고속도로가 우리 마을의 허리를 치고 지나가며
마을을 두 동강 내었고, 같은 선상에 있던 도당재 옆 당산나무도 화를 모면할 수
없었다.
그런 연유로 지금의 신동아 아파트쪽에 있던 아랫마을은 없어지고, 당산의 수
백 년 된 아름드리 노송들도 흔적 없이 사라지게 된 것은 너무나도 아쉬운 부분
이다.
내가 제법 또렷하게 기억을 되돌릴만한 나이로 최대한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
동네는 고속도로 공사로 마을 전체가 정신이 없었다. 도당재 산의 일부를 케익
자르듯이 잘라 평지로 만들고는 그곳을 불도저나 땅강아지 비슷하게 생긴 스크
레이퍼 등 온갖 중장비들의 차고지로 이용했는데, 1년여 남짓 마치 일개미들이
제집 드나들듯이 뻔질나게 움직이더니 어느 날 갑자기 하루 이틀 상간에 일제히
종적을 감췄던 기억이 있다.
경부고속도로와 제3한강교(지금의 한남대교)의 개통, 그리고 제3한강교에서
또 다른 갈래로 말죽거리까지 직선으로 내달린 강남대로를 따라 순차적으로 진
행된 강남개발 붐은 여지 없이 서초동에도 들이닥쳤으며 그때까지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던 서초동은 불과 10~20년 사이에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어울
릴 정도로 바뀌어 버렸다.
마을과 마을 사이의 경계를 이루던 나지막한 산들과 정겨운 고개들은 “언제
이곳에 산과고개가 있었냐?”는 듯 불도저의 시커먼 배기가스 굉음과 함께 그저
94 _ 서울고 35회 졸업 40주년 기념 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