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 - 여영난 도록 전자책150x224
P. 22
행복한 사람이 되자
며칠 전 한 일간지에 유방암 3기 선고를 받고 생의 마감준비를
하면서 포기를 하려다가 마지막 남은 소원, 그림을 그렸더니 암
이 도망가고 10년째 행복하게 그림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기
사가 대문짝만하게 나왔다. 미술 치료 공부에 입문하여 여러 프
로그램에서 임상을 하고 또 보아왔던 나로서는 놀라운 일은 아니
지만 그림을 그려서 암을 이겨 냈다는 매력을 가져보았다. 돌아
보면 그리움으로 살아온 우리의 삶, 아쉬움의 옛 이야기들을 별
빛처럼 달빛처럼 그림으로 물들여온 그녀의 10년은 일생에서 최
고의 삶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저녁 무렵에 밥 짓느리 피운 장작불 연기가 몽글몽글 올
라오는 시골집 굴뚝, 해바라기, 매화, 버들강아지 같은 그림에 매
달렸다. 이민 생활에서 더욱 그리워지듯, 그리웠던 것들을 모두
그리며, 하고 싶은 것, 그리고 싶은 것을 마음껏 그녀의 가슴으로
가지고 올 수 있었던 결과다.
역대 많은 화가도 그랬거니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일상적
인 삶 속에서도 조금의 정신질환은 안고 살아가는 것 같다. 생활
그 자체가 고달파서도 그렇고 이민자의 삶이라는 것이 그리 쉽
고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가끔은 창작인들
이 너무 예술성에만 치중해서 가식이 맑은 정서를 손상시키기도
하고 우리가 일상에서 거짓말은 죄라고 인식하여 경멸하지만 화
가의 화폭에 거짓 표현은 창작이라는 이름으로 죄라기보다는 존
중을 받을 때가 더 많다.
심오한 예술 세계에 몰두하고 평범한 그림에서 탈피하기 위해 화
실에서 부단히도 노력을 하며 육신을 혹사해 가며 창작의 바다를
고독하게 헤엄치는 열정의 작가도 없지 않다. 이렇듯 고뇌하며
작품을 탄생시키는 작가의 고독한 삶보다는, 그리움을 그림으로
추구하는 어느 암환자의 삶처럼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 삶이 되고 우리 몸에 약이 되는지 우리
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22